[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 "우리는 불만 없어. 그냥 살아. 그냥 이렇게 사는거지 뭐…."
지난달 27일 분당의 한솔 7단지 영구임대 아파트.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익숙할 법한 놀이터에 노인들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자장면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온통 노인들의 모습만 보였다.
이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어 지난 1994년 처음 입주민을 맞았다. 이곳에는 독거노인 492가구(32.9%), 장애인 272가구(19.2%), 새터민 87가구(6.1%), 보호대상 한부모가정 38가구(1.7%), 국가유공자 25가구(1.4%) 등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 전용면적 26.4㎡와 31.32㎡짜리 소형 주택에는 거실 겸 큰방, 작은방과 좁은 화장실 하나가 전부. 보증금은 210만~250만원, 월 임대료는 4만~5만원 선이다.
다소 열악하게 느껴지는 주택이지만 이곳에 입주하고 싶어 대기 중인 가구가 2500여가구란다. 송창호 LH 주거복지처 사업총괄부장은 "영구임대주택이 전국 19만가구 정도 있는데 전체 대기자들이 6만~7만가구"라고 귀띔했다. 한 가구당 평균 2명이 거주할 것이라고 쳐도 족히 12만명의 가족이 영구임대에 보금자리를 틀고 싶어 한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영구임대주택에 엄청난 숫자의 대기자가 생긴 것은 그만큼 퇴거는 하지 않고 있어서다. 한 번 들어온 입주민은 웬만해서는 나가지 않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나도록 주거상향을 유도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없는 데다 퇴거시킬 강제력도 부족한 때문이다. 송 부장은 "단지마다 차이가 있으나 연간 퇴거율이 5% 정도"라면서 "제도적으로는 점진적 주거상향을 꾀하도록 돼 있으나 입주기준보다 생활여건이 개선되더라도 퇴거를 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LH는 임대주택관리 규정에 따라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날 경우 2년마다 단계별로 30~40%씩 임대료를 인상, 주거지를 이전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6년이 지나더라도 보증금 등 주거비용이 주변 시세보다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이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구임대주택에 한 번 입주하면 그 자리에 못을 박게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입주자들의 주거상향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지 못하며 영구임대의 슬럼화를 가속시키는 문제까지 나온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관리의 어려움도 적잖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실무적으로 가장 애로사항은 정신질환이나 알콜중독 등의 입주자를 상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관리직원에 대한 폭력도 문제고 단지 내 공동체 의식을 해치는 요인이지만 강제로 격리할 수도 없다는 것이 큰 고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김태원 의원(새누리당)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17개 시도별 영구임대주택 평균대기기간'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전국의 영구임대주택은 14만78가구다. 또 입주 대기자는 총 5만6672명으로 평균 22개월을 대기해야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LH 관계자는 "지나치게 긴 대기수요를 해소하기 위해 영구임대 30%와 국민임대 70%로 혼합한 단지구성을 추진하고 있다"며 "더 나아가 기초수급자가 아닌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들을 유입시켜 '소셜 믹스(Social Mix)'를 통해 커뮤니티를 건전하고 활기차게 바꾸도록 제도 변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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