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MRA 2단계 격상 논의했지만 양측 모두 소극적…FTA 협상문 명시도 무용지물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애플 아이폰의 1차 출시국에서 우리나라가 번번이 빠지는 이유 중 하나인 한미 전파인증 상호인정 협상이 8년째 지지부진하다. 양국은 현재 1단계인 상호인정 범위를 2단계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소극적이어서 앞으로도 한국이 아이폰 1차 출시국에 포함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내 기업도 미국에 제품을 수출할 때마다 전파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불편을 피할 수 없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이 아이폰을 1차 출시한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홍콩, 일본, 싱가포르는 모두 미국과 방송통신기자재의 국가 간 상호인정협정(MRA) 2단계를 체결했다. 미국과 푸에르토리코(미국 자치령)를 제외하고는 호주와 중국만이 미국과 MRA 2단계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다.
MRA는 한 국가에서 통신기기 전파인증을 완료하면 다른 국가에서 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인정 범위에 따라 1·2단계로 나뉜다. 1단계에서는 한 국가에서 받은 시험성적서를 다른 국가가 인정해주고 2단계에서는 시험성적서 인정은 물론 제품 출시도 자동으로 허가해준다. MRA 2단계가 체결되면 기업이 상대방 국가에 제품을 출시하기 전 별도로 전파인증을 받아야 하는 절차도 생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미 MRA를 2단계로 격상하면 애플이 아이폰을 미국에 출시하는 시기에 국내에도 들여올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1차 출시국에 포함되지 않으면 공급 물량을 받기 어려워 국내 출시 시기는 더 늦어질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2005년부터 MRA 2단계 격상 논의를 시작했지만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담당 인원도 적은 데다 그마저도 올 초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미국 측 직원이 교체되면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MRA 협상도 이메일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문에 MRA 2단계 격상을 위해 양측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됐지만 현실은 걸음마 수준인 셈이다.
전파인증은 전파 혼선과 간섭을 방지하고 전자파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지만 양국이 MRA 2단계를 체결하면 이 절차도 간소화할 수 있다. 아이폰을 포함한 최신 외산 전자제품의 국내 도입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전자제품을 수출할 때 투입되는 절차상 비용,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국립전파연구원 관계자는 "MRA 1단계만 체결해도 제품 인증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MRA 2단계 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서로 충족해야 할 조건이 많아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 FTA 협상문에 기재된 대로 한미 양국이 협상에 속도를 내 MRA를 2단계로 격상하면 기업들은 미국 수출 절차가 간소해지고 소비자도 더욱 빠르게 최신 제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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