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에 다니는 A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실내 세차장으로 향했다. 할부가 끝나 완전히 자기 소유의 차가 됐지만 연식이 오래돼 깔끔하게라도 보이고 싶었다. 6년전 2000cc급의 중형 세단을 마련하고 고향을 내려갔을 당시, A의 어깨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산데 대한 훈장 같았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 추석, 고등학교를 나와 대기업에 생산직 사원으로 취직한 친구 B가 자신보다 한 단계 급이 높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온 것이다. B를 비롯한 초등학교 동창들의 저녁모임에서 연봉 얘기가 나오자 A는 더 속이 상했다. 친구들 중에 자신의 연봉이 가장 낮은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 재계와 노동계에선 통상임금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통상임금의 범위를 놓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보느냐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결론이 나게 되면 근로자들의 퇴직금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지금까지는 퇴직금을 정산할 때 기본급만 계산됐다. 즉, 기본급 60에 상여금 40을 합쳐 100을 받는 근로자가 있다면 이 근로자는 60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은 것으로 계산해 퇴직금을 받았다. 하지만 법이 바뀐다면 100에 따른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3년치 소급분을 포함해 일시에 38조원의 추가비용 부담이 생긴다고 한다. 이로인해 40만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재계는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노동계는 수치가 과장됐다고 반발한다. 노동계가 추정하는 기업의 추가부담액은 4조~5조원 수준이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연장근무에 따른 부담 증가가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년간 대기업 공장에 근무하는 B의 연봉은 8000만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억대를 받는다는 얘기도 간혹 들린다. 하지만 B가 다니는 회사 노조는 B의 기본급이 월 200만원이 안된다고 주장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B의 회사는 수당과 상여금을 더하면 B의 고정급여는 월 400만원이 넘는다고 반박했다. 이는 휴일과 야근 특근수당을 합치지 않은 숫자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A도 자신의 연봉을 최대한 부풀려 얘기했다. 사장의 기분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명절 떡값과 식대 등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두 연봉에 포함시켰다. B 역시 고정급여 외에 철야와 주말 특근을 최대한 했을 때를 기준으로 얘기를 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물론 A와 B 모두 연봉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는 입장이 달라진다. 고정급여 외에 간헐적으로 나오는 수당은 연봉으로 간주하지 않고 협상에 임한다. A와 B가 다니는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A와 B에게 지급되는 비용을 연봉으로 간주하면서도 통상임금으로 포함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한다. 적어도 같은 사안에 대해 동일한 자세만 유지하더라도 노사간 간극이 상당부분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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