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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잊은 이들]밀양시민의 추석 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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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잊은 이들]밀양시민의 추석 두 풍경 ▲정홍원 총리가 지난 11일 단장면사무소에 도착하자 반대하는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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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밀양시민들이 맞이하는 이번 추석은 한가위 보름달처럼 환하지 못하다. 추석이 끝나면 한 바탕 진통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8년 동안 진행되면서 갈등을 겪어온 밀양 송전탑과 송전선로 공사가 다시 시작될 계획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밀양시를 방문해 송전선로 공사 재개를 위한 밀양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날 그동안 한국전력과 협상을 벌여 온 특별지원협의회는 보상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정 총리가 밀양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 기자는 동행했다. 그 자리에서 밀양시민들에 나타난 두 가지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추석에 친척들이 밀양을 찾아오면 이들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안부를 묻거나 덕담 보다는 송전선로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밀양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곳은 모두 다섯 곳. 단장면,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 청도면 등이다.


이중 산외면의 경우 3개 마을이 이번 공사와 관계돼 있는데 1개 마을만 보상에 합의했을 뿐 2개 마을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추석은 왔지만 추석이 마음속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들, 그들 중에 밀양시민이 있다.

#1 보상 합의한 A씨의 집


추석 차례가 끝난 A 씨의 집. 몇 가지 전과 과일, 고기를 썰어 마련한 음복상이 차려졌다. A 씨와 서울에서 고향을 찾은 아들, 사촌들이 음복상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아들:(과일 하나를 먹으며)"언론 보도를 보니까, 한전(한국전력)이 절반에 이르는 주민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던데, 맞습니까?"


A 씨:(술 한 잔을 마신 뒤)"우짜겠노? 나라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8년 동안 끌고 온 문제 아이가. 총리도 두 번이나 찾아오고, 무작정 반대한다고 되는 것도 아이고. 이카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기라. 우리도 좋은 기만 아닌 기라. 나라에서 방법이 없다고 하니 우리가 받아주고 그만큼 우리 지역을 위해 정부와 한전이 뭘 해 줄 것인지 따져 보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데이."


아들:"나라가 원한다고 뭐든지 다 해주기만 해서는 안되죠. 우선순위를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지. 희생이 많이 뒤따르는 건데, 정부에서 그만큼 보상을 해준다는 거예요?"


A 씨:(한 숨을 내쉬며)"우리가 감당해야 할 희생이 있지 않겠나. 나라도 그만큼 보상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가. 총리가 직접 말했으니 믿어봐야지. 한전도 기존보다 50억원 더 높게 보상금을 약속했고. 근데 난 걱정되는 게 하나 있는데 보상에 합의한 사람들과 아즉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관계가 안 좋아질까 봐 걱정인기라. 조용히 살던 시골 마을에 이 무신 난린지...보상안에 합의는 했지만 영 찜찜한 기라..."


# 송전선로 반대하는 B 씨의 집

추석 차례를 말없이 끝내고 B씨와 B씨의 동생, 아들은 성묘를 위해 선산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을 잠자리들이 앞다퉈 허공을 날아오르고, 따스한 햇볕이 가득한 지금이다. 지나쳐 온 언덕에 잘 익은 밤송이가 입을 쩌~억 벌리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고 있었다.


'햇볕 가득한 마을' 밀양.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저 건너 산에 설치돼 있는 송전탑이 갑자기 B 씨의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산 곳곳에 불쑥불쑥 솟아오른 송전탑과 늘어진 선로가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 삭막한 느낌을 준다. B 씨가 한 숨을 크게 내쉰다.
.
B 씨의 동생:"저 아래 ○○네도 어제 보상에 합의했다고 하데요. 형님은 우짤낀데예?"


B 씨:(손으로 송전탑을 가리키며)"저그 함 봐라! 저기 이제 우리 동네는 물론 밭, 도랑, 우리 조상 묘지 위로 휙휙 지나가는 기라.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고압 송전선로로 자연과 우리 몸에 심각한 상처가 오는 기라. 농작물은 죽어가고 우리 몸도 죽는 기라."


아들:(부드러운 말투로)"정부가 뾰족한 대책이 없다며 밀양시민들에게 희생을 부탁했고 그만큼 보상해 준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받아들여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B 씨:(답답한 표정으로)"정부와 한전의 대책은 우선순위가 틀린 기라. 이번에 총리가 와서 여러 가지 약속을 하고 한전이 보상액을 높이고 했다 아이가. 근데 이건 공사를 한다는 전제 조건에서 마련된 보상안 아이가. 우리는 그걸 원한 게 아닌 기라. 먼저 지중화, 우회선로 등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고민해 보자고 했다 아이가. 근데 정부와 한전은 '밀양이 아니면 절대 안된다' '송전탑과 송전선로 밖에 대안이 없다'는 조건을 미리 깔아 버렸다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노하고 있는 기라. 다른 노력은 해 보지도 않고 지들 편한 데로 해 버리는 거와 다를 게 뭐 있노!"


밀양의 2013년 추석은 기쁘지 않다. 민족 명절인 추석이 지나면 한국전력의 송전선로 공사는 다시 시작될 것이고, 반대하는 주민들은 머리에 띠를 매고 공사 중지 시위에 나설 것이다. 물리적 충돌도 예상된다.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상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보상안에 합의했든, 반대하든 밀양 주민들의 가슴에 추석의 여유로움은 없는 상황이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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