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 자기도 마찬가지였다.
초오~ 빠지게는 아닐지 몰라도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산다고는 살았다. 학원 선생이란 게 남 보기엔 멀쑥해서 그렇지 목이 쉬거나 목에서 피가 나오도록 떠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었다. 같은 학생을 가르치는 자라 하지만 교육공무원들처럼 자리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제 실력껏 버텨서 제 실력껏 가져가는 자영업자요, 비정규직 임시 노동자에 불과했다. 비린내 나는 날계란을 수도 없이 깨먹으며, 밤낮없이 목에 마이크를 걸고 다녀야 비로소 명강사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강사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었고 그래야 을이라도 을다운 을이 될 수가 있었다. 마지막 다니던 학원 원장이 부도를 내고 달아나지만 않았더라면 아직도 그는 그곳에서 그 짓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개천도 넓은 강에 이르러선 비로소 몸을 푸는 법이다. 그렇게 몸을 풀고 천천히,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다. 하림에겐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젯밤의 일만 해도 그랬다. 남경희의 방문에 이어 그녀를 바래다주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또 이장을 만나고, 그 전에는 하소연이 왔다가 기어이 일을 저질렀고, 또 개 죽는 장면도 보았고... 어쨌거나 이곳에 와서 조용한 날들이 없었다. 강 건너 불 보듯 남의 일에 상관 않고 조용히 처박혀서 <모헨조다로>의 눈 먼 처녀 가수의 이야기나 쓰고 가려 했던 처음이 계획이 마구마구 뒤틀어져 있었고, 그는 그 사이, 어느 틈엔가 ‘남의 일’ 속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빈둥거려보고 싶었다. 배가 고팠지만 참았다.
정오까지 그렇게 빈둥거리다가 일어나야지, 했던 한 하림의 다짐은 그러나 정확히 열한시 십분 전에 깨어지고 말았다. 현관 밖, 수도 있는 마당으로 슬그머니 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체면없이 가볍게 클락숀까지 빵빵하고 울려대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안에 있는 자기보고 들으라고 울리는 소리가 틀림없었다.
‘누군가....? 길을 잘못 들어온 차일 리는 없고....?’
하림은 여전히 일어날 생각을 않고 비몽사몽간에 생각했다. 길이라고 해봤자 과수원 지나 저수지 가는 길 밖에 없는데....그렇다고 이장이나 수도 고치는 사내가 일부러 차를 몰고 찾아왔을 리는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감을 잡을 필요도 없이 곧 남녀 한 쌍이 낄낄거리며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허락도 없이 현관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그리곤 뒤이어 귀 익은 목소리 하나가 방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야, 장하림! 여태 자냐?”
“누구....?”
“야아! 세월 좋다, 세월 좋아!”
“똥철이.....?”
하림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방에 뛰어든 인간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임마! 너그 성님이다.”
시선 끝에 동철이 헤헤거리며 웃고 있었다.
“웬일....?”
하림이 여전히 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웬일이라니? 야, 너 벌써 주인이라도 된 양 하구나. 진짜 주인 왔어. 일어나 봐!”
동철의 말에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현관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에 여자 그림자가 하나 동철을 따라 들어오다 말고 엉거주춤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자 그림자가 말했다. 뜻밖에 윤여사 목소리였다. 하림은 잠이 확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글. 김영현 /그림.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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