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염경엽 감독의 묘수와 박동원의 값진 희생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55초

염경엽 감독의 묘수와 박동원의 값진 희생 염경엽 넥센 감독[사진=정재훈 기자]
AD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한 번 꺾인 선수단의 분위기는 살아나기 힘들다. 그라운드 밖의 문제가 더해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넥센의 6월이 그랬다. 승리는 고작 여덟 번에 그쳤고, 꼴찌 한화(14패) 다음으로 많은 13패를 당했다. 선수단은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내야수 김민우와 신현철의 이탈에 심판으로부터 오심 피해까지 입었다.

균열이 생긴 타선은 6월 한 달 동안 리그 최하위(0.258)의 타율을 남겼다. 팀 방어율도 4.54로 썩 좋지 않았다. 염경엽 감독은 분위기 쇄신을 위한 처방으로 선수들을 자주 불러 모았다. 별다른 효과를 보진 못했다. 선수 대부분이 “괜찮다”고 입을 모았지만 더그아웃 분위기는 4, 5월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원투펀치인 브랜든 나이트와 벤 헤켄마저 부진을 거듭하자 염 감독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한 관계자는 “선수단 특유의 활력이 사라진 것 같다”며 “주장 이택근의 얼굴부터 근심으로 가득하다. 변화가 절실해 보인다”라고 했다.


염 감독은 “몇 차례 소집에 큰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며 일부 지적을 인정했다. “침체된 팀 분위기가 뿌리 깊게 자리를 잡은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변화를 향한 시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극적인 승리였다.

염 감독은 단순한 승리보다 짜릿한 그것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10점차 이상의 대승이 아니었다. 선수 모두가 함께 일구는 값진 역전승을 떠올렸다.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붙었다. 선수들이 스스로 투혼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했다. 기록지만 봐도 총력전을 가늠할 수 있는 경기에서 이기길 바랐다.


염경엽 감독의 묘수와 박동원의 값진 희생 염경엽 넥센 감독(왼쪽)과 박병호[사진=정재훈 기자]


염 감독은 6월 말부터 경기 운영에 변화를 줬다. 타자들을 그라운드에 모두 투입시키며 다양한 작전을 펼쳤다. 성공적인 변신에는 시행착오와 희생이 따르는 법. 대표적인 피해자는 포수 박동원이었다. 6월 28일 대전 한화전에서 7회 대수비로 나섰으나 한 차례도 타석을 밟지 못했다. 7-8로 뒤진 9회 1사 1, 2루에서 대타 송지만과 교체됐다. 송지만이 포수 파울플라이로 돌아서고 후속 문우람마저 삼진으로 물러나 넥센은 7-8로 졌다.


지난 3일 마산 NC전에서도 박동원은 7회 대수비로 포수 마스크를 썼으나 공격에 가담하지 못했다. 2-4로 뒤진 9회 1사 1루에서 대타 조중근과 교체돼 더그아웃을 지켰다. 넥센은 조중근의 안타로 만든 1사 1, 2루에서 문우람이 적시 2루타를 쳐 한 점을 따라붙었으나 서동욱과 강정호가 모두 삼진을 당해 3-4로 졌다.


경기 뒤 염 감독은 “승부가 연장으로 이어질 경우 누굴 포수로 앉힐 생각이었냐”라는 질문에 “서동욱”이라고 답했다. 서동욱은 상무 시절 주전 용덕한(롯데)의 빈자리를 메운 적이 있지만 프로에선 포수 경험이 없었다.


강수를 두고도 이기지 못한 염 감독은 지난 5일 목동 LG전에서야 뜻을 이뤘다. 넥센은 5회까지 4-8로 뒤졌으나 7-9로 추격한 8회 5점을 뽑아 12-10의 역전승을 거뒀다. 박동원은 이날도 대수비만 맡았다. 7회 허도환으로부터 마스크를 넘겨받았으나 이어진 공격 1사 만루에서 유한준과 교체됐다. 유한준은 밀어내기 볼넷을 고르며 한 점을 보태 후배의 희생 가치를 드높였다. 타석에서 박동원이 의기소침해질 것을 우려한 취재진의 물음에 염 감독은 말했다.


“동원이도 팀이 먼저라는 걸 잘 알 것이다. 그래야 이전처럼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할 테고.”


염경엽 감독의 묘수와 박동원의 값진 희생 박동원[사진=정재훈 기자]


사실 이날 경기 운영의 백미는 삼중도루였다. 넥센은 9-9 동점을 이룬 2사 만루에서 유재신의 홈 스틸로 역전에 성공했다. 상대 마무리 봉중근이 베이스를 크게 벗어난 2루 주자 강정호를 견제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염 감독은 경기 뒤 “그토록 원했던 분위기 쇄신이 그 지점에서 이뤄졌다”라고 했다. 당시 타석에 있던 김지수에 대한 칭찬이었다. 1군 첫 타석에서 베테랑 봉중근을 상대로 11구까지 가는 접전을 펼쳐 주자들의 작전 수행을 가능하게 했단 설명이 뒤따랐다. 염 감독은 “볼카운트가 불리해져 4구째부터 삼중도루 사인을 냈는데 봉중근이 걸려들지 않았다. 김지수가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 덕에 역전을 이룰 수 있었다”라고 했다.


너무 몰입했던 탓인지 경기 뒤 모자를 벗은 염 감독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퇴근길은 1시간여가 지나서야 열렸다. 맨손으로 얼굴을 비벼가며 이날 경기를 복기했다. 상대 지명타자 이병규가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건 그제 서야 알았다.


극적인 승리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넥센은 이후 4연승을 달리며 1위 삼성과의 격차를 0.5경기로 줄였다. 무엇보다 선수단의 분위기가 크게 살아났다. 경기 뒤 김병현은 “재밌죠? 이런 게 야구예요”라며 특유 미소를 지어보였다. 몇몇 선수들은 평소 하지 않던 콧노래를 부르며 짐을 정리했다. 그 중 한 명은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며 엉덩이를 흔들기도 했다. 9회 포수 마스크를 쓰고 마무리 손승락과 호흡을 맞춘 이성열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잘한 것도 없는데 왜 그러세요”라며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이내 라커룸 입구에서 소리를 지르며 반기는 동료들의 힘찬 환영 세례에 “죽는 줄 알았어요”라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성열이 포수를 맡은 건 두산 소속이던 2011년 9월 27일 잠실 삼성전 이후 처음이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