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감정 기복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무기예요."
무뚝뚝해 보이는 부산 아가씨가 씩씩한 걸음걸이로 클럽하우스로 들어왔다. 바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첫 '2승 챔프'에 오른 김보경(27ㆍ요진건설)이다. KLPGA투어는 올 시즌 매 대회 새 챔프가 탄생하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에 E1채리티오픈과 롯데칸타타여자오픈을 연거푸 제패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 "연습벌레의 끈기로"= 김보경은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데…"라며 수줍어했다. 사실 '2연승'과 동시에 인터뷰가 쇄도했다. 이날도 3곳에서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카 소렌스탐이 초창기 인터뷰가 부담스러워 막판에 일부러 3퍼트를 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그 심정을 알 것 같다"고 했다. 나서기 싫어하는 내성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오히려 차분한 성격이 도움 될 때가 많다"고 했다.
타고난 천재스타일은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김정원씨(57)의 후배에게 이끌려 실내연습장에 따라간 게 골프입문 동기다. 아버지가 골프를 전혀 모른다는 점도 독특하다. "재미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골프에 푹 빠졌다"는 김보경은 "무려 2년 만에 100타를 깼을 만큼 소질도 없었다"며 "중학교 3학년 때 부산에서 열린 지역대회에 처음 출전해 88타를 쳤다"며 웃었다.
동력은 당연히 막대한 연습량이다. 요즈음 선수 부모들 사이에 "보경이처럼 연습하면 된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는 까닭이다. 실제 하루 평균 6~7시간은 손에서 클럽이 떠나지 않는다. 지난겨울에는 체력 훈련에도 공을 들여 드라이브 샷 비거리도 260야드까지 늘렸다. 지난해 보다 20야드나 더 나간다. 김보경은 물론 "다들 그 정도는, 아니 더 많이 하는 선수들도 많다"며 손사래를 친다.
▲ 5년 만에 2승 "올해는 전지훈련도 갈래요"= 2004년에 프로가 됐다. 운도 따랐다. 1년 동안 준회원, 정회원 자격 취득에 연말에는 시드전까지 통과하는 등 파죽지세였다. 첫 우승은 그러나 2008년에서야 터졌다. 두산매치플레이 초대챔프에 등극했다. 정확히 100경기 만에 E1채리티에서 2승째를 수확했고, 1주일 만에 또 다시 3승째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E1채리티 최종일 유난히 마음이 평온했다"며 "우승 욕심도 전혀 내지 않았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했다.
투어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9년간 캐디를 도맡았던 아버지가 체력부담 때문에 롯데칸타타에서는 쉬었다. 아버지는 불안한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성적을 수시로 확인했다. 아예 꼴찌부터 차례로 화면을 올렸다고 한다. "내 딸이 없네"하며 기대치를 부풀린 순간 리더보드 맨 꼭대기에서 딸 이름을 발견했다. 김보경도, 아버지도 "롯데칸타타 때는 마치 다른 사람이 플레이한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시쳇말로 '그 분이 오신 날'이었다.
만 27세, 김효주(18)를 비롯해 장하나(21), 양수진(22), 허윤경(23) 등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득세하는 KLPGA투어에서는 적지 않은 나이다. 김보경은 그러나 "막판 체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점 이외에는 큰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대신 나에게는 지금까지의 경험이 있다"는 김보경은 "국내 선수들은 생명력이 너무 짧다는 점이 오히려 아쉽다"며 "체력훈련을 열심히 해서 적어도 서른은 넘기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 때문에 그동안 전지훈련 한 번 못 가봤다"는 김보경이 "이번 겨울에는 반드시 전지훈련을 가겠다"는 소박한 꿈을 털어놨다. 상금랭킹 3위(2억6400만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아마추어골퍼를 위해 골프 잘 치는 방법 딱 1가지만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리듬을 유지하고 피니시를 끝까지 해야 한다"는 대답이다. "공이 제대로 안 맞는 가장 큰 이유는 스윙이 갑자기 빨라지거나 느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론은 역시 '연습'이다.
손은정 기자 ej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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