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사박물관 전시실에 갔다가/5천년 중국국보전에서 만났다./그 충직한 신민(臣民),/집으로 가는 길도 잊은 채 차디찬 돌로 굳어/천 년 동안이나 무릎을 꿇고/직언을 올린다 한다.//
돌 속에 오월의 뻐꾹새와 목청 좋은 메아리들과/돌 속에 배추밭과 노랑나비 떼와 개복숭아 나무와/돌 속에 속눈썹 길어 그늘지는 딸과 일곱 살 난 어여쁜 아내와/돌 속에 암수 모란 한 쌍과 사슴 한 송이도 있었던가./돌 속에 갈대는 어린 바람들을 키우고/돌 속에 문들은 여닫히며 아이들을 키웠다.//그 천 년,//왕릉 속에서 피는 흘러 땅을 적시고/머리칼은 온통 백발,/뼈와 관절들과 오장육부는 하나로 달라붙었다./얼마나 간곡한 직언이기에/절간 목어들이 산 물고기로 돌아오는 동안/명부로 돌아가는 것도 잊은 채 돌이 되었을까./부엌문 여는 소리도 굳고/호시절을 재잘대는 시냇물들도 굳고/상갓집 대문을 밝힌 중년의 근조등들도 굳고/말랑말랑한 시간도 굳는다./천 년 먼지를 온통 뒤집어쓰고/굳어 천년을 견딘 그 사내,/돌 속에서 우두뚝 무릎 관절 푸는 소리와 함께/벌떡, 일어난다.
장석주의 '엎드린 사내 - 주역시편.543'
■ 이 활물(活物)의 우렁찬 내공을 읽으며, 끝없는 질투를 느낀다. 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난 돌조각 '엎드린 사내' 하나가, 시인의 마음줄에 올라타면서 천 년 시공을 훌쩍 넘어 미시사(微視史) 속으로 순간이동한다. 이보다 더 감동적이고, 이보다 더 생생하고, 이보다 더 섬세하고, 이보다 더 여운이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나아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스스로 '스토리텔러'라며 턱없이 우쭐대고 다녔던, 부끄러운 나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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