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년 전의 도시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것은 아이들의 장남감과 여자들의 머리 장신구, 찰흙을 구워 만든 인장(印章) 이런 것들 뿐이었다. 특히 아이들의 장남감은 얼마나 많은지 주사위, 진흙으로 만든 작은 황소와 물소 등이 수도 없이 발견되었다. 다른 황허문명이나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신전과 무덤은 물론이고 사람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무기나 고문도구, 감옥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누가 다른 누구를 지배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그들은 4000년 전에 그렇게 잘 짜여진 도시를 만들었고, 어떻게 그렇게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며 살았을까?
진화라고 한다면 분명히 사람들은 야만으로부터 문명으로 가는 것을 상상할 것이었다. 하지만 모헨조다로를 보면 인간의 진화가 반드시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시대라 불리는 그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인간적인 품격이 있었다. 오히려 문명이 꽃을 피우고 있다는 이 시대야말로 가장 야만적인 시대가 아닌가.
잠시 있다 하림은 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그런 어느날 모헨조다로에 어둠의 신이 내려왔다. 강력한 철제무기를 지닌 암흑의 대왕, 잔인한 전쟁의 신, 그의 이름은 오메가였다.
배문자에게 넘길 만화대본의 기본 줄거리는 청동기 시대 모헨조다로의 평화로운 신인 알파와 철기시대를 업고 등장한 야만적인 악의 신 오메가와의 싸움이 될 것이었다. <전쟁이 인간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시작된다. 어떻게 보자면 인간의 역사는 철기시대 이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대량학살은 인간이란 동물의 진화에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두운 본성이며, 진화되지 않고 남아있는 원숭이의 본성, 대뇌 깊숙이 숨겨져 있는 공격적인 파충류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말은 영웅의 승리야. 슈퍼맨이나 베트맨처럼.....알았지? 어디까지나 만화니까.....”
배문자가 말했었다. 그리고 혼자 무엇이 우스운지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런 미래를 믿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하림에게 모헨조다로는 수수께끼였다. 지상에 인류라는 이름으로 그런 도시가 있었다는 자체가 꿈 같았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히말리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만 왕국 부탄이 그런 나라와 비슷할 것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공짜로 교육을 받고, 모든 사람이 공짜로 의료혜택을 받으며, 도둑도 강도도 없으며, 경쟁이니 자살이란 말은 아예 사전에도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처럼 세계 제일을 소리 높여 부르짖지 않아도 국민행복도가 가장 높은 나라, 굳지 애국심을 노래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전통과 지도자를 귀하게 여기는 나라란다.
아마도 수만년이 흐른 후, 지금의 인류가 멸종하고 나서 후대의 어떤 발굴자가 이 지상을 뒤적일 때 그들은 수많은 무덤과 무기들 속에서 부탄이란 나라를 발견하고,
‘아! 그 야만의 시기에도 이런 곳이 있었네.’
하고 경탄을 터뜨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직 하림은 그곳에 가보지 않아서 그렇게 단정지어서 말할 자신은 없었다. 소문대로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동기의 모헨조다로는 분명 그랬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이방지대였고, 수수께끼에 싸인 이상향이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봄비 소리를 들으며, 하림이 그렇게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현관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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