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24일 오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정홍원 국무총리, 현오석 부총리 등이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예결위 여·야 의원들은 정 총리에 추가경정예산 편성 사과를 요구했다. 야당은 "총리 사과가 없으면 회의를 계속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 총리는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뒤 "정부의 미흡한 경제 예측과 세입 전망으로 인해 이번 추경안을 편성해 제출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늦었다. 적절한 시기에 사과하면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은 시기가 중요하다. 정부가 강조한 것처럼 이번 추경이 '경기 부양의 마중물'로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총리의 사과 여부를 두고 오전 회의가 순탄치 않았다. 추경 17조3000억원에서 약 70%인 12조가 세입 경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입을 두고 정부가 잘못 계산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12조원은 국채(나랏빚)로 마련된다.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적절한 시기에 사과할 기회는 많았다. 지난 4월16일 추경안 브리핑 자리에서 현오석 부총리는 "(12조 세입 추경에 대해)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질문의 포인트는 이해한다"며 은근슬쩍 넘어갔다. 지난해 세입을 잘못 계산한 이석준 기재부 2차관(당시 예산실장)과 김동연 국무조정실장(당시 기재부 2차관)도 추경안을 확정하기에 앞서 '경제 성장률 등 대외 여건이 변하면서 지난 정권에서 세입 계산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한 뒤 실무 담당자로서 사과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12조원 세입 추경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담당 실장의 사과가 없고, 담당 차관의 사과가 없고, 부총리의 사과가 없자 국무총리가 직접 나선 형국이다. 그것도 이명박 정권에서 벌어진 일을. 추경안의 국회통과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마당에 첫 시작부터 일이 꼬였다. 추경안의 쓰임새와 증액 여부, 어디에 먼저 사용할 것인지 등 진지한 토론에 앞서 '사과 여부'를 두고 국회 예결특위 여·야 의원들이 얼굴을 붉혔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적절한 시점에서의 사과는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신뢰를 주는 밑거름이 된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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