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근철 기자]1994년 7월로 잠시 돌아가보자. 9일 정오,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의 사망 발표가 나왔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앞둔 시점에 예상치 못했던 초대형 뉴스가 터진 것이다.
40년 절대 권력자의 사망 이후 관심은 북한 내부의 권력 동향이었다. 관련 보도와 전문가들의 진단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대다수는 장기간 후계 준비를 해온 아들 김정일이 주석직을 승계할 것으로 보았다. 관심은 언제, 어떤 형식을 취할지에 모아졌다.
그런데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전문가와 정보 기관들은 보기좋게 헛다리를 짚고 말았다. 북한이 주석직을 사실상 폐기하고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우회 경로를 통해 권력구조의 틀을 새로 짰기 때문이다. 감히 김일성 주석과 동급의 승계를 상상할 수 없었던 북한 내부 정서가 강하다는 점을 간과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방위원장직을 승계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년이 다 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력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미 본토 타격까지 공언하는 바람에 북한의 위협은 미국에서도 핫이슈다. 미국 정부, 정치권, 학계, 언론 모두 나서 북한의 실제 도발 가능성과 의도를 분석하느라 부산하다.
뉴욕에서 만나는 외신기자들도 관심이 높다. "김정은은 어떤 인물이냐", "실제 전쟁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느냐" 등의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런데 누구도 뽀족한 접점과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여전히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수준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4일자에 '북한 김정은의 속마음(Inside the mind of North Korea's Kim Jong Un )'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자문자답했지만 역시 속시원한 답은 찾지 못한 듯했다.
가장 큰 장벽은 북한의 내부 흐름에 대한 정보와 팩트(사실)의 부재 및 혼선이다. 최근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의 비밀 보고서 파동만 해도 그렇다. DIA는 북한이 이미 소형 핵탄두 미사일 능력을 보유했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한ㆍ미 정부는 그 동안 북한이 아직 핵탄두 경량화 기술에는 한참 못 미쳤다고 보고 대응 수위를 조절해왔다. 결국 백악관이 직접 나서 "북한의 미사일 능력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래도 방대한 북한 관련 정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허점은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한ㆍ미 양국은 한반도 특수 상황을 감안해 오랜 기간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대북 정보망을 가동해왔다. 그러나 정작 위기의 순간에 유효한 판단 자료를 뽑아쓰지 못해 우왕좌왕한다면 분명 문제다.
북한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의견은 다양할 수 있지만 판단의 기초 자료는 분명하고 정리돼 있어야 한다. 이는 당장 한반도 전쟁 억지력을 위해서도 시급하다. 또 어떤 형태로든 전개될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북한 지도부는 앞으로도 수시로 핵무기 카드를 내세워 주도권을 쥐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재미를 봤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협상과 흥정에 나서면서 상대방이 쥐고 있는 카드의 허실을 분명히 꿰뚫고 있어야 끌려다니지 않는 법이다.
김근철 기자 kckim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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