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사과'. 수능시험이나 대학입시철에 많이 등장하는 상품 중 하나이다. 기원은 이렇다. 1991년 9월 말 사과주산지인 일본 아오모리현에 태풍이 불어닥쳤다. 최대 풍속 53.9㎧에 수확을 앞둔 사과의 80%가 떨어지고 말았다. 모두가 망연자실해 있을 때 한 청년이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20% 사과를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 '강풍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면 수험생에게 효험이 있으리라. 마침 대학입시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 개당 1000원에 팔리던 것을 '합격사과'란 이름을 붙여 1만원에 팔기 시작했다. 결과는 물론 대박!
이후 이 아이디어는 우리나라에도 차용돼 입시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곤 한다. 봉지를 이용해 '합격사과'란 글씨까지 쓰인 사과에다 사과열매가 성장할 때 사각의 아크릴 상자를 씌워 재배한 '네모 사과'까지 나오는 등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더 상업적으로 활발하게 응용되는 면도 있다.
'우박사과' 이야기도 흥미롭다. 영거는 미국 뉴멕시코주 고원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농부다. 어느 해 사과가 전에 없이 풍작을 이뤄 그의 사과는 전국 각지의 구매자들과 미리 판매계약이 성사됐다. 그런데 수확이 임박한 시점에 우박이 쏟아져 사과들이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주변 농가도 큰 피해를 입었다.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발만 구르고 있을 때, 영거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사과를 급히 구매자들에게 보내면서 한 장의 카드를 동봉했다. '올해 사과가 뜻하지 않게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박이 만든 영광의 상처이니 양해 바랍니다. 이 우박 맞은 상처는 고원에서 자란 특산품이란 표시입니다.' 구매자들 중 반품한 사람은 없었다. '이야기 속에 담긴 긍정의 한줄'(양태석)에 실려 있다.
사과와 관련한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관점의 변화'를 통한 위기극복이다. 아무리 어려운 국면이라도 어딘가에 돌파구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우리 경제도 지금 안팎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성장률 저하, 일자리 부족, 물가상승, 수출애로 등 난제가 쌓여 있다. 한편으로 미래를 견인할 새로운 동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 같은 파고를 넘느냐는 것이 신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이 파고를 넘으려면 과거와 다른 접근방법이 요구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 실현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으려 하고 있다.
'창조경제'란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으나,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미국의 '애플'과 같은 기업을 많이 배출하는 경제라 할 수 있다. 애플은 기존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새롭게 조합하고 응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한 사례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첨단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아이팟, 아이패드 등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기울어가던 회사를 대표적인 창조기업으로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애플의 성과도 결국은 관점을 달리한 결과이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캠페인을 내건 애플은 '한 입 베인 사과' 그림을 로고로 쓰고 있다. 로고 자체가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5대 과일 중에서는 사과의 생산량이 가장 많다. 주위에 널린 흔한 과일이지만 올해엔 지금까지와는 달리 본다면, 또 다른 '합격사과' '우박사과' 그리고 '애플' 같은 창조성이 넘치는 회사가 태어날 수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우리 경제를 활성화할 새로운 엔진인 '창조사과'라 해도 좋겠다. 관점을 바꾼다면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와 같은 시대를 바꿀 '창조사과'를 우리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김화동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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