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이사회가 어제 박동창 전략담당 부사장을 보직 해임했다. 외부 기관에 왜곡된 정보를 전달해 특정 사외이사의 선임을 반대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유에서다. 사외이사들 주도로 부사장급 임원을 해임한 것은 이례적이다. 경영진과 사외이사진 모두 리더십에 상처가 났다. 지배구조 개편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 파장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미국의 주주총회 안건 분석기관인 ISS가 지난 11일 낸 보고서 때문이다. ISS는 보고서에서 "ING생명 인수 무산이 일부 '정부 측 사외이사들'의 반대 때문으로 이경재, 배재욱, 김영과씨 등 3명의 재선임을 반대해야 한다"고 기관투자가들에 권고했다. 그러나 배 이사는 인수 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김 이사는 최근 추천된 인물로 이와 무관하다. 보고서가 틀린 것이다.
배경에 박 부사장이 있다는 게 이사회 판단이다. 박 부사장이 ISS 측과 만나 ING생명 인수 무산이 '정부 측 사외이사'들의 반대 때문이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ING생명 인수에 제동이 걸린 경영진이 특정 사외이사들의 재선임을 막으려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본 것이다. 박 부사장 해임은 결국 ING생명 인수를 둘러싼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 볼썽사나운 갈등의 산물인 셈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박 부사장의 정보유출은 경영진이 외국기관에 정보를 흘려 기업가치를 떨어뜨린 시장문란 행위다. 주주들의 권익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자 임원의 비밀유지 의무 규정도 위반했을 소지도 있다.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의 책임도 따져야 한다. 어 회장은 박 부사장의 정보 유출이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설사 사전에 몰랐더라도 최고경영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KB금융의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 갈등은 오랜 관치 아래 주인 없는 은행이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볼 수 있다. 바람직한 지배구조 정립이 필요하다. 정부는 임기와 관계없이 금융권 공공기관장을 교체할 방침이라고 한다. 낙하산 최고경영자는 물론 권한은 크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사외이사의 기능과 역할을 함께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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