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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제주오름에서 말을 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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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제주오름에서 말을 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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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석양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제주의 푸른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솟구친 바람이 들판을 지나 한라산을 휘감는다. 섬 구석구석 돌담과 들녘을 내달리며 거칠 것 없이 휘몰아치던 바람이 어느 순간 잠잠해진다. 첩첩이 어깨동무를 한 368개의 오름이 온 몸으로 바람을 맞이한다. 그제서야 바람은 오름에 몸을 맡기며 깊은 잠에 빠진다.

'올레' 걷기 열풍이 '오름'트레킹으로 옮아가고 있다. 제주의 들판에 솟아 있는 크고 작은 오름들은 그 자체로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자, 제주를 바라보는 전망대다. 오름에 올라서 보는 제주는 아래에서 보던 제주와는 전혀 다르다.


이곳 사람들에게 오름은 말과 소를 놓아 기르는 방목장이기도 하고 조상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오름에서 왔다가 오름으로 돌아가는 삶의 터전이자 안식처 같은, 그야말로 '제주의 속살'이다.

크고 높은 몇 곳을 빼고는 오름은 오르는데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불과 10분 만에 정상에 닿는 곳도 도처에 있다.


비슷비슷하게 솟아 있는 오름이라도 제각기 느낌은 다르다. 허리 아래쪽에 우람한 삼나무숲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너른 초지의 능선으로만 이뤄진 것도 있다. 분화구의 흔적이 깎아지른 벼랑처럼 파인 것이 있는가 하면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막 떠낸 듯한 부드러운 곡면을 그리고 있는 것도 있다.

별 헤는 밤, 제주오름에서 말을 잊었습니다

이런 오름을 밤에 올라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한마디로 심심하다는 제주의 밤을 한 방에 날려버릴 만큼 짜릿함과 색다른 즐거움이 넘쳐난다.


지난 주말 '야간 오름 트레킹'에 나섰다. 제주 해비치호텔&리조트 레저 전문팀이 길동무를 자청했다.


목적지는 제주의 알프스로 불리는 영주산이다. 제주에는 산이라 불리는 오름이 다섯곳이 있다. 한라산, 성산, 산방산, 두럭산 그리고 영주산이다. 영주산은 해발 326m, 높이 176m인 기생화산으로 분화구는 남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영주산의 속명은 영모루인데, 산 북쪽은 곧 정의 ㆍ 김녕 등이다. 정의 ㆍ 김녕 ㆍ 함덕에 신선이 많아 이 산이 곧 바다 위에 있는 세 신선산 가운데 하나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영주산이 신선이 살았던 산이라고 불려지는 이유다.


해비치호텔에서 출발해 15분여를 달리자 성읍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는 영주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별 헤는 밤, 제주오름에서 말을 잊었습니다


해가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때 트레킹에 나섰다. 영주산 야간 트레킹은 느릿느릿 걸어도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하다.


시작은 나무 계단이다. 계단을 따라 10분여 오르자 더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왜 영주산이 제주의 알프스로 불리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짧은 거리를 올랐을 뿐인데 펼쳐진 풍광은 장관이다.


저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 녹색과 갈색의 천을 기워 만든 융단 같은 조각포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그 들판이 끝나는 곳에선 노을빛에 물든 바다가 반짝거리고 있다.


오름 중턱에서 제주도 특유의 장례문화인 '산담'을 만났다. 말이나 소의 방목으로 인한 묘지의 훼손을 막는 목적으로 봉분 주변에 돌담을 쌓아 올린 '산담'은 산불과 태풍으로부터 무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제주에서는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산담 안에서 밤을 보내면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담 안쪽 무덤 주인들이 산짐승이나 나쁜 기운으로 부터 지켜준다는 것이다.


어느새 어둠이 밀려왔다. 이제서야 제대로 된 야간 오름을 맛볼 시간이다. 헤드랜턴을 착용했다. 불빛에 의지해 정상을 향해 오른다.

별 헤는 밤, 제주오름에서 말을 잊었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상쾌하다. 별들도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초롱 초롱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하다.


중간에 다소 가파른 나무계단이 나오지만 쏟아지는 별빛과 침잠에 빠진 주변 오름들의 풍광에 취해 '놀멍 쉬멍' 걷다 보면 쉽게 오를 수 있다.


올레길을 처음 두 발로 걸었을 때 느린 속도가 보여 준 제주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있다면, 야간 오름을 올랐을 때의 감격 또한 그 못지않을 만큼 감동적이다.


영주산에서 만난 이성건(남양주ㆍ50)씨는 "낮에 올랐던 오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별과 함께하는 밤의 오름은 이색적이고 아름답다."면서"어선들의 불빛과 오름군락의 실루엣이 특히 장관이다"고 즐거워했다.


30여분을 올라 정상에 섰다. 앞쪽으로 성읍마을의 아기자기한 불빛들이 따뜻하게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멀리 서쪽으로 눈을 돌리자 봉긋 봉긋한 오름군락이 실루엣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한라산의 거대한 곡선이 손에 잡힐 듯 지척이다.


동쪽으로 시선을 주자,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고 그 뒤쪽으로 성산일출봉이 한 눈에 잡힌다. 일출봉 주변으로 밤바다를 집어등으로 황홀하게 밝히는 어선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별 헤는 밤, 제주오름에서 말을 잊었습니다


해비치 레저전문팀 서병철씨는 "저녁 노을을 감상하며 올랐다가 별과 달빛이 엮어내는 아름다움과 함께 하산하는 야간오름은 까만밤의 추억여행으로 그만"이라고 자랑한다.


야간오름 트레킹을 마친뒤 제주의 또다른 밤을 위해 해안도로 드라이브도 곁들여 볼만하다.


표선해안도로에서 성산일출봉을 지나 하도해변에 이르는 길이 안성맞춤. 해안길을 달리다보면 푸른 어둠 속에서 흰포말이 부서지는 제주 바다의 장쾌한 경관을 맛볼 수 있다.


웅장하게 서 있는 성산일출봉을 지나 하도해변으로 가다가 해변가의 초지 곳곳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보자. 밀려갔다 다시 밀려드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바다 건너 우도의 야경을 바라보면 절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서귀포(제주)=글 사진 조용준 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
제주공항에서 시내를 빠져나와 97번 도로와 비자림로 방향으로를 가다 송당리에서 성산, 성읍 방면으로 1136번 도로를 타고 가면 성읍민속마을이 나온다. 마을 뒷산이 영주산이다.


별 헤는 밤, 제주오름에서 말을 잊었습니다

△야간오름=해비치 호텔&리조트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통해 제주의 겨울을 알리고 있다. 야간오름트레킹과 BBQ는 레저팀 직원들과 함께 영주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면 감칠맛 나는 바비큐 파티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6시30분 신청자에 한해 출발. 헤드랜턴과 장갑, 따뜻한 옷들을 잘 챙겨서 나서자.


'쫄븐 갑마장길 트레킹'도 눈길을 끈다. '갑마'는 제주에서 키우는 말 중에서도 가장 최상급 말을 뜻하는데 임금에게 진상하던 말을 길러냈던 마장이 갑마장이다. 이 길을 돌며 직원들이 목축문화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064-780-8000)


△볼거리=서귀포권에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성산일출봉, 우도를 비롯해 섭지코지,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 중문관광단지, 천지연폭포, 산방산, 용머리해안 등이 대표적인 관광지다. 동쪽해안은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5~10번 구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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