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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 열풍, 불평등 심화된 현실의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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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쪽 분량 대작 '레 미제라블' 두번째 완역한 원로 불문학자 정기수 "위고의 소설은 마르지 않는 샘"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위대한 사람의 퇴장은 위대한 시대의 도래에 필요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두 번 완역한 원로 불문학자 정기수(84·사진) 전 공주대 불문과 교수를 사로잡은 소설 속 문장이다.


정 전 교수는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이겼다면 세계사가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라며 "소설의 시작점인 1815년은 장발장이 19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하는 해이자 워털루 전쟁의 패배로 나폴레옹 시대가 막을 내리는 해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중요한 기점"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장발장의 이야기로만 널리 알려진 '레 미제라블'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혁명과 반혁명으로 진보와 후퇴를 반복했던 19세기 프랑스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다.

"장발장 열풍, 불평등 심화된 현실의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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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2년 첫번째 완역본을 출간한 지 50년 만에 2500쪽 분량의 대작 '레 미제라블'을 두 번째 완역한 정 전 교수는 "2008년도부터 시작해 꼬박 5년이 걸렸다"며 "원전에 충실하되 아름다운 표현이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원문과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새롭게 번역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 번째 완역본이 나온 이후 50년 동안 언어와 독자, 그리고 나 자신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번역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손길을 거쳐 50년 만에 새롭게 탄생한 '레 미제라블'은 출간 2달 만에 10만부 이상 팔려나갔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역시 국내 뮤지컬 영화 사상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이처럼 식지 않는 '레미제라블' 열풍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혁명의 시대였지만 여전히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19세기 프랑스 사회상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빈부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을 연상시킨다"며 "분명 유사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1832년 무장봉기 시가전을 대선결과와 직접 연결 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빅토르 위고가 소설의 앞부분에 써넣은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과 같은 작품들이 무익하지는 않으리라"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정 전 교수는 "이 작품에는 역사와 사회, 정치, 철학, 종교 등 인간사의 모든 것이 담겨 있어 아무리 길어내도 그 샘이 마르지 않는다"며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꾸준히 읽히는 책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이 책이 50년 전에는 지금과 같은 열풍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그동안 한국사회 내에서 불문학도 발전했고, 독자층의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이 책이 읽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번역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주는 장면과 장발장이 자신으로 오해받아 죄를 뒤집어쓴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수하는 장면을 꼽았다.


정 전 교수는 "미리엘 주교는 영화나 뮤지컬에서 아주 잠깐만 등장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중요한 인물로 다뤄진다"며 "1권의 1편에서 주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상세하게 나오는데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과자이자 죄수였던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와의 만남을 통해서 사람으로 거듭나고, 끊임없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성인이 되어간다"며 "이같은 치열한 과정을 통해 장발장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 미제라블'을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담아낸 일생일대의 역작이라고 자평한 정 전 교수는 "이번에 번역작업에 몰두하면서 오히려 몸도 마음도 젊어졌다"며 "앞으로는 소설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명시를 골라 번역과 함께 해석을 덧붙이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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