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低의 귀환]①체력 키운 기업들, 엔화 환율 안무섭다
지난 10년새 원ㆍ엔 환율은 두 차례의 하락기와 두 차례의 상승기를 거쳤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세 번째 엔화 약세(엔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100엔 기준 환율이 장중 1200원 아래로 떨어지며 본격적인 엔저시대의 막이 올랐다. 지난 2004∼2007년 첫 번째 하락기에 환율은 700원대까지 내려갔다. 현재 환율도 장기간 하락이 전망되고 있는 만큼 그에 맞는 투자법이 필요하다. 엔저를 맞아 버려야 할 고정관념은 무엇이고 어떤 종목을 주목해야 하는지, 주식 외 다른 투자법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지난 1997년 엔화 약세가 한국 수출주를 무너뜨리며 금융위기를 촉발한 이후 수출주에게 엔저는 절대적 악재였다. 엔화가 약세를 보일라 치면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 중 수출주부터 검토하기 바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엔저=수출주 악재'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일부 업종은 되레 엔저 수혜주로 돌아섰고, 같은 업종 내서도 기업별로 희비가 갈리기도 한다. 투자자로선 엔저 시기를 맞아 수출주 솎아내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1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이후 수출주의 내수주 대비 상대강도를 원ㆍ엔 환율(100엔 기준)과 비교한 결과, 수출주와 환율 간 상관관계가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1월 상대강도를 1.0으로 했을 때 지난해 말 환율 하락(1400원대→1200원대)시기에 상대강도는 1.7부근서 1.9로 올랐다. 환율은 하락하는데 수출주는 강세를 보였다는 의미다.
통상 엔저 피해 수출주로는 자동차, 기계, 전기전자(IT) 등이 꼽힌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의 경쟁이 심한 업종들이다.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하는 한국과 일본 업종 간 경합도를 보면, 자동차는 20%가 넘고 기계와 IT는 10∼20%사이다. 이원선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과 경쟁 구도인 한국 수출주는 그동안 원엔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최근에는 패턴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원ㆍ엔 환율이 1200원대로 진입한 지난달 이후 현재까지 주요 수출주의 주가 추이를 살펴보면 업종별 혹은 종목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IT다. 환율이 1315.08원에서 1202.94원으로 9.32% 하락할 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6.99%, 9.84% 급등했다. 과거 '엔저 피해주'로 불리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IT업체의 펀더멘털을 이유로 꼽는다. 전 세계서 애플과 경쟁하는 삼성전자는 5분기째 영업익 신기록을 쓰고 있지만, 소니 등 일본 IT는 최근 분기에도 흑자전환에 실패했다. 엔저 타격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업체의 펀더멘털이 우수한 상황이다.
신일본제철 등 일본 철강사와 해외서 경쟁하는 철강주도 승승장구다. 포스코는 11.09%, 현대제철은 8.43% 뛰었다. 엔저로 한국 철강 생산품 가격 경쟁력은 다소 약화될 수 있지만 엔화 부채에서 발생하는 환손익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 사는 각각 2조2000억원, 5000억원씩 엔화 순부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엔화가 약세일수록 환손익을 누린다.
기계 업종도 일본 부품 수입 비중이 높은 데 힘입어 상승세다. 대표주인 두산인프라코어가 6.15% 뛰었고 태광은 3.27% 올랐다. 다만 원ㆍ엔 환율이 1100원 아래로 떨어지면 수출단가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인 만큼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자동차는 여전히 피해주인 경우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원엔 환율이 1200원대로 내려서며 각각 8.32%, 12.3%씩 주가가 빠졌다. 지난 2004년 이후 현대차 주가와 엔ㆍ달러 환율을 비교해보니 상관계수가 -0.82를 기록, 역의 상관관계가 나왔다. 반면 도요타는 엔달러 환율과 +0.86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엔저일 때 한국차가 일본차에 밀려 약세를 띠는 것이다.
그밖에 피해주로는 카지노주(GKL, 파라다이스), 호텔(호텔신라), 게임ㆍ엔터테인먼트(에스엠, 엔씨소프트) 등이 꼽힌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호텔신라는 일본 방문객 감소가 예상되고,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업체는 일본 로열티 매출액 환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GKL과 파라다이스는 일본 방문객 비중이 50% 이상에 달한다.
허재환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엔ㆍ달러 환율이 세 자릿수에 안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한국은 이미 일본과 경쟁하는 시장이 크게 축소된 상황이어서 엔화 약세 영향은 업종에 따라 국지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종 기자 han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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