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2>불온한 바람 그리고 꽃

시계아이콘02분 14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2>불온한 바람 그리고 꽃 북한산 둘레길은 안내 표지판만 따라가면 지도 없이 쉽게 갈 수 있을 만큼 곳곳에 많이 설치돼 있다.
AD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오후 바람이 세졌다. 풍경소리가 들렸다. 오르막 비탈, 절집 처마에서 울리는 소리다. 다시 소리가 희미해질 즈음 솔밭 한 가운데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온다. 무리는 자주 둘레길을 걸어온 듯 잰 걸음을 한다. 웃고, 떠들고 다들 신 난 표정이다. 연신내나 불광동쯤의 어느 공장에서 왔는지...무리 중에 청색 작업복을 입은 이도 있고 등산복을 잘 갖춰 입은 이도 있다.


"어서 구기동 가서 막걸리 마시자"며 서로를 격려하고 재촉하는 소리가 정겹다.옛성길을 넘으려면 두어시간. 그들의 즐거운 회식자리가 눈에 선하다. 구름 위의 다리 '스카이 워크'. 그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다리 아래 은평 시내가 햇살에 반짝인다. 구름다리를 지나면 둘레길은 불광동 주택가로 접어든다. 3,4층 규모의 다가구주택, 낮은 단독주택들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늘어선 광경이 평창마을 길과는 딴판이다.


길가의 전봇대에는 '전셋집 구함', '월세 60만원' 등 세입자를 구하는 홍보물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아파트 31평, 실입주금 1억900만원'이라는 네모진 플래카드도 펄럭댄다. "도무지 어떤 집인지 궁금하다." 강남에선 30여평이면 10억원에 넘어간다. 소규모 다세대주택일 터다. 최근 하우스 푸어들이 집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고 신음소리가 가득하다. 집은 고통의 뿌리다. 또 빚의 다른 이름이다. '집=빚'에 사로잡혀 인생을 저당 잡히고 금융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래도 집은 지어지고 또 팔겠다고 아우성인 세상은 참으로 많은 표정을 지녔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의 하굣길과 둘레길이 잠시 겹치는가 싶더니 소로로 이어진다. 평탄하고 아늑한 뒷동산길이다. 여기서 길은 뉴타운과 산기슭 사이로 흘러 저만치 치달아간다. 상수리나무, 밤나무 등 잎을 떨군 활엽수 아래 길섶의 진달래가 눈에 들어온다. '앗 ! 분명 이른 봄의 꽃망울인데...' 부풀은 모양새가 놀랍다. 잠시 계절을 잊었나보다. 진달래가 당할 시련이 안쓰럽다.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2>불온한 바람 그리고 꽃 기자촌은 1969년 언론인을 위한 주택 420여가구가 들어선 곳으로 2004년 은평뉴타운 사업구역으로 지정됐다.


은평 뉴타운, 지금의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살기좋은 도시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도심 재개발의 일환인 뉴타운사업의 첫 작품이다. 그는 삽질을 다 완료하지도 않은 채 권좌에 올랐다. 이곳은 예전엔 '기자촌'이라고 불렸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은 무주택기자들에게 공영개발을 통해 수십여평 규모의 땅을 쪼개 헐값에 제공했다. 기자들은 집과 동시에 '보도지침'도 함께 받았다. 그 결과 기자들은 오랫동안 침묵하거나 독재에 편승, 권력의 시녀가 됐다. 공무원이나 직업군인을 위한 주택단지를 개발한 사례는 있었지만 특정직업인인 '기자'들에게 집이 제공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예를 찾기 어렵다.그러나 마을은 워낙 급조된 탓에 버스도 다니지 않고 편의시설도 없었다. 기자들은 서둘러 마을을 뛰쳐 나와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떠날 때 그들의 주머니는 얼마간 불려져 있었다.


40여년 후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연이어져 있던 단층짜리 슬라브 집이나 슬레이트집들은 다 사라졌다. 거대한 공사판이 펼쳐져 서글픈 역사가 인멸되는 동안 본래 살던 이들도 떠났다. 대신 투기꾼들과 건설업자, 땅을 많이 가진 이들이 거대한 잔치를 벌였다. 은평뉴타운은 야심찬 의욕에도 불구하고 고분양가 논란, 미분양, 베드타운, 투기 열풍, 원주민 재정착률 미흡 등으로 지금껏 몸살을 앓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서울시는 미분양을 해소해 수천억원의 혈세를 여전히 회수하지 못 했다. 최대 2억2000만원까지 할인 분양중인 아파트도 남아 있다. 일부는 임대주택 및 대학생 기숙사로 쓰여진다.


구름정원길, 마실길 일대에서 은평뉴타운만이 불온한 정치의 유산인 것은 아니다.'위대한 성군' 세종의 넷째 아들인 금성대군의 사당인 '금성당', 서자인 화의군의 무덤인 '화의군 묘역'도 몰려 있다.이들은 형제인 세조에게 죽임을 당해 은평에서 기려지고 있다.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2>불온한 바람 그리고 꽃 고려 때 창건된 진관사는 집현전 학사들이 안식년 동안 머물며 공부하던 곳으로 6.25 때 소실됐다 재건됐다.


불온함은 진관사계곡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진관사는 고려 때 창건돼 6.25 당시 화재로 소실됐다가 재건됐다. 조선조 세종 당시엔 독서당이 있어 집현전 학사들이 안식년 휴가동안 학문을 정진한 곳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독서당이 있던 자리는 찾지 못 하고 있다. 지금의 진관사는 '템플스테이'와 '사찰 음식연구'로 유명하다. 은평 뉴타운 건설 당시 진관사계곡에 들어서 있던 무허가 식당 수십여 채가 모두 철거됐다. 무허가 식당들은 보상금도 제대로 못 받고 인근 일영이나 벽제 등의 유원지로 흩어졌다. 지금 울창한 송림 사이 맑은 개울가에 징글맞게 삶을 꾸렸던 이들의 흔적은 없다. 그것이 파묻고, 헤치고, 들쑤셔진 공사판을 봐야만 변화라고 믿는 사람에게야 업적이라고 거품 물 자랑거리인지는 모르겠다.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2>불온한 바람 그리고 꽃 워낙 급조된 탓에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했던 기자촌은 지금은 사라진 옛 154번 버스 종점이기도 했다.


식당이 사라져 허기를 달랠 길 없다고 아쉬워 마라. 개울 건너 구부러진 오솔길과 개울을 지나면 묵밥집이 나오고 한참을 더 가면 정겨운 밥집들이 있다. 여느 유원지 풍경처럼 족구장도 보이고 등나무 벤치도 보인다. 거기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 걸치면 부러울게 없다. 다리쉼을 할만한 장소다. 그새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여온다.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2>불온한 바람 그리고 꽃




이규성 기자 peac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