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원자력발전소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을 위해 출범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원전의 안전에 대해 국민들의 불안이 깊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해 설립 1년 만에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내년도 예산을 오히려 21%나 늘려 하는 일 없이 몸집만 불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안전위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원자력 안전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지난해 10월26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출범했다. "국민 여러분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있어 안심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원자력안전의 길잡이가 되겠다"는 것이 출범의 변이었다.
그러나 그 후 안전위가 보인 모습은 이 같은 의욕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을 안심시키키는커녕 잇따른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오히려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30년 수명을 다한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해 안전위는 교과부의 심사기간을 포함해 34개월째 '가동 연장이냐 폐쇄냐'를 놓고 검토만 계속하고 있다.
위조부품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 영광 원전에 대해서도 안전위는 사건이 터진 뒤에야 사후 보고를 받는 허술함을 보였다. 국민과의 소통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출범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더라도 예산안 등 구체적 정보에 대해 공개를 꺼리고 있다. 어느 기관보다 국민과의 소통을 우선시해야 할 기관인데도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내년도 예산은 대폭 증액 편성했다. 안전위의 2013년 예산안은 800억7600만원으로, 올해의 659억1000만원보다 21.5%나 증가했다. 정부의 2013년 예산이 올해보다 5.3% 늘어난 것과 비교할 때 4배나 되는 증가폭이다. 그러나 올해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못한 안전위가 왜 예산을 늘려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내년도 예산안을 분야별로 나눠보면 ▲원자력안전관리 92억7600만 ▲원자력안전연구 188억4600만 ▲원자력안전 국제협력 32억2400만 ▲출연기관 지원 487억3000만 원이다. 예산의 절반이 넘는 출연기관 지원은 ▲원자력안전기술원 연구운영비 269억400만 ▲원자력통제기술원 연구운영비 218억2600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안전위의 전체 예산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의 경우, 특히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동국대 김익중 교수는 "영광 원전에 위조부품이 납품되었다는 사실을 안전위 조사가 아니라 외부의 제보로 파악하는 무능을 보여줬는데, 기술원은 10년 동안 불량 부품이 납품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안전위 운영의 부실은 안전위 출범 당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설립 당시 강창순 위원장과 윤철호 부위원장을 비롯해 상당수 위원들이 친 원자력 학계 및 업계 출신이어서 원자력의 안전을 감독할 적임자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지난 1년간의 활동은 이 같은 지적이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안전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위조 부품 문제의 경우 안전위에 보고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면서 "그러나 문제가 된 만큼 앞으로 이런 부분 등을 감안해 제도적 보완 장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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