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유통업체들이 자율적으로 마련한 신규출점 자제와 월2회 자율휴무 등의 합의가 하루만에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와 국회가 손발이 맞지 않는 행보를 취하고 있어 생긴 결과다.
1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이 현행 자정~오전 8시에서 밤 10시~오전 10시까지로 4시간 연장되고 현재 매월 2일 이내인 의무휴업일도 3일 이내로 확대된다. 또 기존 의무휴무제에서 제외됐던 쇼핑센터, 복합쇼핑몰 등으로 등록된 대형마트도 똑같이 규제를 받도록 했다.
이같은 개정안 발표는 기껏 정부가 유도한 유통업체들의 자율적 '상생' 합의 마련에 결국 국회가 법으로 틀어막는 꼴이 됐다.
앞서 15일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대ㆍ중소 유통업계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열고 2015년까지 대형마트는 인구 30만명 미만, SSM(기업형슈퍼마 켓)은 인구 10만명 미만 중소도시에서 출점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이 자리에서 유통업체들은 월2회 이내의 범위에서 자율 휴무하기로 결정하고 골목상권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2015년 말까지 신규 출점을 자제하기로 했다. 또한 쇼핑센터 등에 입 점한 대형마트 휴업, 절차상 하자 있는 규제 처분의 철회 등도 논의해 자율적으로 상생방안을 실현해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회 지경위에서 통과된 대형 유통업계 규제 강화 법안으로 이같은 대형유통업체와 중소상인 당사자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전날 아침까지만 해도 지경부 주관으로 유통발전협희외 발족시켜서 업계 자율로 상생방안 마련하자고 해놓고 그날 저녁에는 자율로 안되겠다, 법으로 만들 자며 엇박자를 내놓는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출점자제 등 많은 양보를 했는데도 국회가 더 강력한 규제법안을 내놓으며 자율 합의안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는 "상생과 자율로 가보려고 했는데 이런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린 법안 통과"라면서 "누가 봐도 대선을 앞둔 포퓰리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소 유통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찾아주는 것이 맞는데 자꾸 대형마트만 억누르려고 하고 있다"면서 "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이번 영업규제 법안으로 유통업계의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업시간 제한을 밤 10시~오전 10시까지로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2일에서 3일로 확 대할 때 기업형슈퍼마켓(SSM)의 매출 감소는 연간 8600억원에 달한다. 대형마트는 6조 9000억원의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돼 전체 유통 기업의 매출 감소는 7조8500억원이 될 전망 이다.
소비자들이 불편함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밤 늦게 장을 봐야하는 맞벌이부부 등은 10시 이후에 마트가 닫기 때문에 장을 볼 만한 곳이 없어지게 된다. 이 시간에는 재래시장도 문을 닫아 결국 진정성 없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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