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사라지는 운동회, 이대로 괜찮을까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38초

[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사라지는 운동회, 이대로 괜찮을까 다음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AD


며칠 전 깜짝 놀랄만한 뉴스를 접했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의 3분의 1 이상이 지난해 운동회를 열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유은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의원(민주통합당)이 23일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5863개의 초등학교 가운데 487개교(8.3%)가 운동회를 치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은 유독 무심했다. 591개교 가운데 무려 224개교(37.9%)가 운동회를 열지 않았다. 이 나라에 과연 ‘체육’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일반적으로 체육은 스포츠의 의미가 깊다. 하지만 엄연히 중요한 교육의 한 분야다. ‘지덕체’라 하여 지육과 덕육 다음으로 부를 정도다. 체육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체덕지’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중·장년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청, 백군으로 나뉘어 하루를 신나게 놀던 운동회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글쓴이 역시 운동회와 관련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종이에 적힌 사람을 찾아 그 사람과 함께 뛰는 종목이 있었는데 집어든 종이에는 ‘아버지’가 적혀 있었다. 마침 그해 운동회에는 아버지가 와 있었다.

손을 잡고 뛰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손에 끌려 절룩거리며 뛰고 있었다. 그때 글쓴이는 알았다.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상이군인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생전에 일상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지만 제대로 뛰지 못했다. 조금 슬픈 추억이지만 색색의 습자지를 붙인 곤봉을 들고 매스게임을 한 일, 기마전을 하다 떨어져 팔뚝에 상처가 난 일 등 운동회를 생각하면 여러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사라지는 운동회의 뒤에는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행사를 교직원들이 준비하지 않고 이벤트 업체 등에 맡기는 학교도 상당수라는 것이다. 운동회 위탁 업체와 계약한 초등학교는 지난해 518개교(8.8%)나 됐다고 한다. 운동회 위탁 비율이 가장 높은 울산광역시의 경우 119개 초등학교 가운데 지난해 40개교(33.6%)가 운동회를 전문 업체에 맡겨 치렀다.


[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사라지는 운동회, 이대로 괜찮을까 다음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오늘날 체육의 문제는 초등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어제오늘의 문제 또한 아니다. 상급 학교로 갈수록 이는 더 심각해지고 세월이 흐를수록 심화되고 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하는 학생’은 미국 같은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 동계올림픽 역사상 전무후무한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500m 1000m 1500m 5000m 1만m)의 기록을 남겼던 에릭 하이든이 은퇴 뒤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글쓴이가 부산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모교는 부산·경남 지역에서 이른바 명문교로 불렸다. 학생들의 체육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제한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검도부, 탁구부 등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중학교에 진학해 배운 검도가 선수 수준인 친구들도 있었다. 육상 높이뛰기 중등부 부산 지역 기록 보유자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입학시험을 쳐서 들어온 친구들이었다. 초등학교 때 운동부에 있던, ‘학생 선수’는 거의 전무했다.


글쓴이는 2학년 때 탁구부에 지원했다가 평균 점수가 80점이 되지 않아 퇴짜를 맞았다. 고교 입학시험을 앞둔 3학년 1학기 때까지 농구 코트에서 땀을 흘리던 게 엊그제 일 같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모교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할아버지 격인 예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름방학 동안 성적이 좋지 않은 3학년 학생들을 학교 시설에서 합숙시킬 정도였다. 2학년 때부터 체육 수업은 접할 수 없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점수는 축구공을 담벼락에 대고 차거나 배구공을 토스하는 것을 보고 대충 매겼다.


[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사라지는 운동회, 이대로 괜찮을까 다음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그러나 그 시절에도 운동 마니아는 있었다. 모교에는 훌륭한 체육관이 있어 농구부의 훈련이 없을 때면 일반 학생들이 우르르 코트로 달려 나갔다. 3대3 길거리 농구보다 한 단계 위인 정규 농구 동아리도 있었다. 3학년 2학기 중간고사 때까지 선생님들에게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혼나던 이곳의 회원들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잘 살펴보면 이런 일들이 여기저기 있을 것이다.


요즘 같은 사회에서 ‘선행 학습’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노년기 건강을 위해 평생 쓰게 될 몸이 만들어지는 청소년기에 ‘선행 운동’을 하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한 일이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