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에 미적거리던 만모한 싱 정부는 지난달 14일 월마트 같은 외국계 멀티 브랜드 슈퍼마켓의 인도 진출을 허용하는 등의 개혁안을 발표했다. 외국계 멀티 브랜드 슈퍼체인의 인도진출 허용안은 지난해 말부터 현 정부가 수차례 추진하다가 좌절한 정책이다. 그만큼 인도 국내에서의 반발이 크다.
그러나 지난 8월 초 개혁파로 통하는 팔라니아판 치담바람이 새 재무장관에 임명되면서 개혁안 추진이 힘을 받고 있다. 치담바람 장관과 싱 총리는 인도경제 개혁의 '환상의 콤비'이다. 특히 1991년 인도가 외환위기에 직면했을 때 싱 총리는 당시 재무장관으로, 치담바람은 상무장관으로서 폐쇄적 인도경제를 개방으로 이끄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인도경제의 개혁 전도사'로 불린다.
외국계 멀티 브랜드 슈퍼마켓 허용정책 등에 대한 야권의 반대는 매우 거세다. 지난달 말 노조와 제1야당(BJP) 등 수천만명이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연립정부 파트너인 트리나물 콩그레스(TMC)당은 개혁안에 반대해 연정을 탈퇴했다. 19석을 가진 TMC당이 탈퇴하면서 집권연합(UPA)의 과반수 의석이 무너졌다. 향후 개혁안 처리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 총리 정부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 4일 보험과 연금시장 개방 등 추가 개혁안을 발표했다.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니다.
그러자 TMC당의 마마타 바네르지 당수는 야권에 싱 총리를 불신임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만약 하원에서 싱 총리 불신임안이 통과되면 인도경제는 극심한 나락으로 빠진다.
싱 정부는 대책을 이미 강구한 듯하다. 집권당의 최고 실력자 소냐 간디도 개혁을 적극 지지한다. 하원에서의 의석 수 계산도 끝낸 것처럼 보인다.
사실 싱 총리가 개혁 전도사로 불리지만, 2004년 집권 이후 변변한 개혁정책을 실행한 게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야당의 반대가 한 원인이다. 하지만 집권연합이 온정적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소위 '포용성장(Inclusive growth)'을 지향하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잠재 성장률이 낮아진 측면이 있다. 현재 인도경제는 성장률 저하와 물가 앙등, 재정과 무역적자 급증 등으로 인해 고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경제가 안 좋으면 2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집권연합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소냐 간디가 결코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왜냐하면 그녀의 최고의 꿈과 목적이 자신의 아들 라훌 간디를 차기 총리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라훌 간디를 시어머니 인디라 간디와 남편 라지브 간디를 이어 인도 총리가 되게 하는 것을 숙명으로 생각한다.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하고도 자신이 아닌 만모한 싱을 총리로 내세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가올 2014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떻게 하든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소매시장 개방 등 개혁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일은 싱 총리가 발표한 개혁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는 것이다. 관건은 의석 수이다. 현재 집권 연합의 의석 수는 267석으로 과반수(272석)에 5석이 모자란다. 과반수를 확보하기 위해 집권연합은 평소 우호적이었던 사회주의당(SPㆍ22석)과 대중사회당(BSPㆍ21당)에 손짓을 보내고 있다.
싱 총리는 2008년에도 하원 신임투표에 직면한 적이 있다. 싱 정부가 미국과의 핵 협정을 추진하자 연정의 파트너였던 공산당이 탈퇴하면서 불신임문제가 야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싱 총리. 과연 이번에도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개혁에 매진할 수 있을까.
오화석 인도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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