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8~9일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간 외교 갈등이 사실상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8월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전격 방문 이후 독도 영유권ㆍ과거사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 온 양국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직간접적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미국의 중재 하에 화해를 모색할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냉철히 볼 때 필요 이상의 갈등이 양국 관계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일단 미국의 중재 하에 양국이 화해를 모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한ㆍ일 양국에 최근 영토분쟁 및 과거사 등을 둘러싼 외교갈등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미 고위 당국자가 지난 7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전세기 내에서 수행기자들과 만나 한ㆍ일 외교갈등에 대해 "이는 한국과 일본의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미국은 양국과 양자 접촉을 통해 대화를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특히 "한ㆍ일 양국의 긍정적 관계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점을 알고 있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APEC 정상회의에서 진전을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며칠간 어떤 일이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답해 한ㆍ일 양국을 상대로 집중적 외교노력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번 정상회의 기간)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를 만나는데, 한일 양국 공조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겠다는 것이다.
실제 클린턴 장관은 9일 오전 이 대통령과 만나 원론적이지만 한일 관계의 미래 지향적 발전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넌지시 화해를 권고한 셈이다. 특히 클린턴 장관은 이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 해결 등 동북아 문제와 관련해 한-미-일간 긴밀한 공조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 측도 한일 관계의 변화 필요성을 인식해 일본 측과 의견 조율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8일 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 때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대신과 만나 "현재의 한일간 상황을 가급적 조기에 진정시키기 위해 상호 냉정히 대응해 나가자"라고 의견을 모았다. 두 나라 외교 장관은 특히 "우방국인 양국이 대국적인 견지에서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으며, 특히 북한 문제, 경제ㆍ문화 등의 분야에서 앞으로도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며 "향후 외교 당국 간에도 긴밀한 의사소통을 유지하자"고 합의했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도 지난 5일 청와대로 동북아ㆍ일본 외교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불러 한일 관계 해법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정부가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과의 화해를 준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의 한-일 양국의 화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전략적 준비없이 이 대통령의 독도 전격 방문과 일왕 관련 발언 등으로 한일 관계 갈등을 일으켰다가 뚜렷한 소득도 없이 미국의 중재로 일본 측과 사실상 화해한 꼴이라는 것이다. 손익 계산을 해보면 국내에선 이 대통령의 지지도 상승 외에는 얻은 게 없고, 일본에선 독도 영유권 등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극우파의 위상만 높여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김봉수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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