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곡물가 초비상…우리경제 미칠 영향은
세계 최대 옥수수 소비·생산국인 미국에 55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발생하면서 국제곡물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날이 치솟고 있다. 국제사회는 사료가격과 기타 산업에 미칠 여파와 애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대응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 역시 정부 차원에서 대안 마련에 나섰다.
최근 주요 곡물인 옥수수, 소맥, 대두의 국제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지난 2008년과 2010년경에 발생했던 식량위기(Food Crisis) 재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곡물가격의 급등요인 및 평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20일 옥수수 및 대두 가격이 부셸(옥수수 58파운드/24.5kg, 소맥 및 대두 60파운드/27.2kg)당 각각 8.25달러와 17.58달러로 과거 최고치를 웃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수수는 지난해 6월 10일 7.87달러, 대두는 2008년 3월 3일 15.45달러로 각각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소맥 가격도 같은 날 9.43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 2월 12.8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지난해 최고수준인 8.86달러는 상회한 수준이다. 당시 소맥·옥수수·대두를 대상으로 하는 종합곡물지수인 ‘S&P GSCI’도 533으로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미국 55년 만에 가뭄으로 곡물가격 사상치
세계 곡물가격 급등의 진앙지는 단연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미국이다. 올해 55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발생하면서 옥수수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옥수수 생산과 수출을 각각 4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가뭄이 심화되면서 주요 산지인 중서부 지역의 절반 정도 이상이 메말랐다.
상황이 이런 만큼 미국 농무부(USDA)는 지난 7월 미국의 작황 악화에 기인해 올해와 내년 세계 옥수수 생산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5월 3억7570만톤의 옥수수 생산 전망치를 7월엔 무려 4620만톤이나 줄은 3억2950만톤으로 조정했다.
현재 세계 수출의 13~14%를 차지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도 가뭄의 영향을 이미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세계 옥수수 생산도 내년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대두는 세계 수출의 50%를 차지하는 남미지역에서 연초 발생한 가뭄이 가격상승을 촉발한 데 이어 7월 이후엔 미국에서 가뭄이 지속되자 추가적으로 가격상승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대두 생산 전망치도 옥수수와 마찬가지로 하향조정했다.
소맥은 옥수수에 비해 수출국이 미국, 호주, 러시아 등으로 분산돼 정도는 덜하나 역시 가뭄이 심해진 7월 이후부터 가격이 올랐다.
이처럼 심각한 가뭄 등 기후 이상으로 곡물 생산량이 줄고 가격 변동이 발생하면서 국제사회는 곡물가격 폭등으로 인한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을 우려하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곡물가가 오르면 일반 물가까지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옥수수 가격 상승은 사료와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미 네슬레·크래프트·타이슨 등 미국 식품업체들은 원료 값 상승에 따른 완제품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미국 농무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각) ‘가뭄과 소비자 식료품 지출 비용’ 보고서를 통해 올해 식료품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0%로 지난 2004~2011년의 평균치와 같은 수준이라며 애그플레이션의 피해가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 원재료가 전체 식품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용이 14%에 불과하고 나머지
는 가공, 포장, 서비스, 운송비용 등이기 때문에 가뭄에 따른 원재료 물가 상승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농민과 함께 미국산 식료품을 수입하는 국가의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애그플레이션 엇갈린 전망 속 국내 연말쯤 영향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제이슨 헨더슨은 “최근 식료품 물가 상승으로 가장 큰 부담을 떠안게 되는 사람들은 (미국 소비자가 아닌) 외국 소비자들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국내는 곡물가격 급등과 관련 국내 물가에 미칠 영향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엇갈린 관측과 전망도 나온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수입 곡물이 국내 물가에 4~7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반영됐다는 점을 고려해 국내 곡물가격이 올해 말부터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밀가루는 올해 2분기보다 27.5%, 옥수수 가루는 13.9% 급등하고 식물성 유지와 사료도 각각 10.6%, 8.8% 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번 애그플레이션이 2007~2008년, 2010~2011년 당시의 곡물파동 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엔 식량자급률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정부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과천정부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최근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애그플레이션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며 “국제곡물의 안정적인 확보와 관련업계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장단기 대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국제곡물가 상승은 4개월에서 7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유가공 및 축산물 가격의 인상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원칙적으로는 민간부문이 대응하되 정부는 리스크 분담과 시장 실패에 대비해 완충역할을 수행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정부는 올해 수출입은행의 수입금융 지원규모를 당초 계획했던 32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박 장관은 “곡물 수입업체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해 조기수입을 촉진하고 부담을 완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축산농가와 사료업계에 자금을 지원하고 국내 식용콩의 재고 보유 규모를 4만7500t에서 9만5000t으로 2배가량 확대하는 등의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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