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꾼 사라진 시장, 금융소외자들 돈 빌릴 곳도 사라져...서민대출 실질적인 확대, 생계자금 장기 저리 제공 등 대책 마련 필요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일수꾼들이 밉긴 했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은 이제 돈을 어디서 빌리냐."
수도권 재래시장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는 A(47)씨의 호소다. A씨는 노점상, 즉 무등록 사업자로 신용이 없어 은행권이나 미소금융 등 신용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물건 값이 밀릴거나 급할 때마다 시장에서 명함을 돌리는 일수꾼에게 고리의 일수를 얻어 썼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과 경찰의 불법 사금융 단속으로 시장에서 일수꾼들마저 사라져 돈 빌릴 곳이 없어졌다.
최근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한 불법 사금융 단속으로 오히려 가장 사정이 열악한 금융 소외 계층이 피해를 입고 있다.이에 불법 사금융 대책이'반쪽 짜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은 지난 4월18∼5월31일까지 "영세상인, 대학생, 청년실업자 등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며 전국적으로 불법사금융 특별단속을 실시해 4386건 6400명(구속168명)의 불법사금융업자를 검거했다. 금융감독에 접수된 피해 사례도 2만9000여 건이나 된다.
이에 재래시장 등에서 일수꾼들이 사라졌다. 단속을 피해 영업을 아예 접거나 하더라도 아는 사람을 통해 점조직식으로 움직이는 등 물밑으로 잠수를 탄 것이다.
문제는 A씨처럼 과대채무ㆍ연체 전력 등이 있어 아예 신용 대출이 불가능한 금융 소외 계층들이다. 이들은 '일수꾼 실종 사태'로 인해 돈 빌릴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금융당국에 접수된 2만9383건의 피해 사례 중 금융권의 신용대출 지원 자격을 갖춘 사람은 549명에 불과하다. A씨와 같은 신용 대출이 불가능한 금융 소외 계층은 전국적으로 약 300만 명에 달한다.
정부도 불법사금융 단속과 동시에 서민 대출을 늘리겠다며 미소금융ㆍ햇살론ㆍ바꿔드림론 등의 지원 자격을 완화하는 한편 금융권에 서민 대출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A씨와 같은 금융 소외 계층에 대해선 별다른 대책이 없다. 은행 등 금융권도 노골적으로 "대선을 앞둔 포퓰리즘 아니냐"라며 냉소를 보내며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서민 대출을 꺼리고 있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신용 대출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이 결국 불법 사금융의 가장 큰 피해자"라며 "정부가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장기 저리로 빌려주는 한편 사회보장을 확대해 저소득층을 고리대금업자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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