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공개적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해체를 화두로 꺼내 들었다. 유로존 해체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그리스 2차 총선 날짜가 다음 달 17일(현지시간)로 결정된 가운데 그리스는 2차 총선까지 과도정부를 이끌 수장으로 파나지오티스 피크라메노스 행정대법원장을 임명했다.
◆캐머런 "유로존 해체 여부 결정해야 할 시점"=16일 캐머런 총리는 하원 대정부 질문에서 유로존 지도자들이 유로존을 유지할지 해체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로존 지도자들이 부채위기를 억제하는 데 실패했고 유로존 위기가 또 다른 글로벌 경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다른 유로존 회원국의 연쇄 이탈 가능성을 우려해 대혼란을 겪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유로존이 갈림길에 섰다"며 "유로존 지도자들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유로존 해체 여부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빈 킹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도 이날 "최대 교역 상대가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분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BOE는 유로존 위기가 영국 경제 회복의 주요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2%에서 0.8%로 하향 조정했다. BOE는 위기 이전 성장률을 회복하는 것은 2014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캐머런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캐머런 정부가 보수당의 지지율 하락과 영국 경제 침체 원인을 유로존 탓으로만 돌리려 한다는 비난이 만만치 않다.
씨티그룹의 마이클 손더스 이코노미스트는 "물론 영국의 문제가 유로존 탓이라는 점은 사실이기 때문에 영국을 비난할 수 없지만 영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더 부진한 것은 역내 수요에 있으며 이는 BOE도 인정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영국이 유럽연합(EU)를 셀프서비스 음식점처럼 취급한다고 비난한 바 있다. 영국이 EU 차원의 문제 해결에 나 몰라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2차 총선, 유로존 명운 가를 듯=카롤로스 파풀리아스 그리스 대통령의 연정 구성 중재 노력까지 실패로 돌아가 그리스는 다음 달 17일 다시 총선을 치러야 한다. 다음 달 총선 전까지 과도정부를 이끌어 갈 총리로 파나지오티스 피크라메노스 행정대법원장이 임명됐다.
2차 총선은 그리스가 구제금융 조건인 긴축을 이행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향후 유로존의 운명을 가르게 될 주요 변수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기를 원하지만 잔류 여부는 그리스 국민 스스로 택할 문제"라며 "다음 달 17일 총선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6일 총선에서 원내 제2당으로 급부상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2차 총선에서 원내 제1당에 오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시리자는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과 여의치 않을 경우 유로존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그리스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2차 총선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여론조사에서 그리스 국민 중 80%가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 보면 유로존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시리자가 현 지지율을 유지하며 제1당 지위에 오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여론조사에서는 시리자와 현재 원내 제1당인 신민주당이 각각 20%와 18~19%의 득표율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주요 관계자들은 그리스 구제금융 조건에 대해 재협상할 수 없다며 그리스를 압박하고 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그리스가 유로존 회원국으로 남길 원하지만 구제금융 조건 수정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는 구제금융 조건 수정은 유로존의 신뢰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성장촉진책에 대해서는 협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쇼이블레 장관도 그리스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ECB, 그리스 은행 유동성 공급 차단= 그리스 구제금융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그리스 은행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리스 은행에서는 14일에만 7억유로(약 8172억원)가 인출되는 등 15일까지 이틀 동안 총 12억유로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게다가 ECB는 자본 확충 노력이 미흡한 그리스 4개 은행에 대한 통상적인 유동성 공급을 차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들은 이와 관련해 그리스가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도록 압박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호세 마누엘 곤잘레스-파라모 집행이사의 임기 만료 기념 콘퍼런스에서 "ECB가 절대적으로 원하는 것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드라기는 "협약상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는 ECB 정책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라며 이와 관련 ECB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입장를 밝혔다. 그는 "ECB는 협약에서 명시하는대로 중기적인 물가 안정과 온전한 재무제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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