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박희순(43)이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가 됐다. 물론 영화 안에서의 이야기다. 과거 조직폭력배('가족'), 형사('세븐데이즈'), 축구감독('맨발의 꿈'), 검사('의뢰인'), 왕('가비')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선보인 박희순에게 이번 선택은 일견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충무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그가 본격 성인오락영화를 표방하는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감독 김형준, 이하 간기남)에 출연한 것 자체가 관객들에겐 의외로 여겨진다.
'간통'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룬 '간기남'에서 박희순은 간통 사건 현장을 전문적으로 덮치는 형사 '선우'로 분했다. 처음에는 출연을 망설였지만 이내 호기심이 생겼다. "설정 자체는 재미있는데,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작가와 감독이 계속 바뀌면서 일관성이 없어졌어요. 정극과 코미디를 오가는데 잘못 꿰면 캐릭터 자체도 망가질 수 있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없었던 소재여서 해보고 싶다는 모험심이 컸어요. 할리우드의 팜므 파탈(Femme Fatale) 장르에 한국적 소재를 첨가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흥행에 대한 압박도 작품 선택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연극 배우 12년 이후 영화계로 뛰어든 지 올해로 10년 차. 흥행성적은 언제나 기대치를 밑돌았다. 불과 한 달 전 개봉한 '가비'도 예상 밖의 참패를 겪었다. 그가 '간기남' 개봉을 두고 마냥 의연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배우 생활만 22년째인 박희순의 얼굴에 언뜻 기대와 초조함, 설렘과 불안함이 교차한다.
"제가 흥행 면에서 인증이 된 배우가 돼야 더 좋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위치가 되잖아요. 이번 작품도 모험일 수 있는데 흥행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용기가 생겼어요. 사실 영화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요. 재미있다고 촬영했는데 관객들이 철저하게 외면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게 가장 안 맞았을 때가 '맨발의 꿈'과 '우리집에 왜 왔니'였죠.(웃음)"
그가 자신의 마이너(Minor) 취향에서 살짝 벗어나 관객의 코드에 맞춘 접점이 바로 '간기남'이다. 그렇다면 주연 배우가 말하는 '간기남'의 포인트는 뭘까. "한마디로 '섹시한 코미디'입니다. 과도하게 야하거나 저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고급스럽지도 않아요.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이미 화제가 됐다. 스릴러와 코미디, 로맨스에다 에로까지 아우르는 '간기남'은 상대역 박시연과 박희순의 19금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서 각종 인터넷 포털 인기 검색어를 장식했다. 시나리오에도 없던 파격적인 장면에 개봉 전부터 영화의 수위에 대한 입소문이 뜨거웠다. 예상치 못한 촬영에 의도치 않은 반응이었다.
"대본에는 '키스한다'는 한 줄만 있었는데 현장에 가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저도 몰랐던 것이지만 일단은 여배우인 박시연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연과 김형준 감독님과 이야기를 해서 수위조절을 하면 거기에 따르는 걸로 정했어요. 과거 박시연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대부분 '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박시연이 착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어요."
2시간 내내 다양한 장르를 롤러코스터타던 '간기남'은 '간통만은 절대 안된다'는 다소 싱거운 교훈으로 마무리짓는다. 현실의 박희순은 "결혼도 아직 안 했는데 간통까지 생각해야겠냐"고 응수한다. '간기남'은 박희순에게 "내 필모그래피에서 이런 영화 하나쯤 있으면 좋은 영화"다. 과연 관객들에게도 '내 일생에 이런 영화 한 편쯤 봐도 좋은 영화'가 될지 궁금해진다.
조민서 기자 summer@·사진 이준구(ARC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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