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현대자동차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생애 첫 차로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대우와 기아, 쌍용을 전전해 온 것이다. 딱히 현대차에 악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1위에 대한 공연한 반감(또는 심술)도 아니다.(내 주변에는 1등만 보면 심술을 부리는 이들이 꽤 있지만.)
맥락은 다르지만 애플과도 인연이 없다.
애플 제품이 모두 1위는 아니지만 매킨토시나 아이팟, 아이폰, 또는 아이패드를 가져본 적이 없다.
지금도 내 곁에는 스티브 잡스가 '영혼을 훅~ 불어넣어 만들었다'는 그의 피조물이 단 하나도 없다.
그 탓인지 잡스가 살아 있을 때 그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애플빠'니 '잡스 대통령(Steve Jobs FOR PRESIDENT)', 심지어 그를 예수에 빗대기까지 하는 걸 보면서 속이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작년 10월5일 덜컥 그가 죽어버렸고 곧 이어 책이 한 권 나왔다.
전기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란 책이다.
10월25일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됐다.(이게 말이 되는가? 한 사람이 죽은 지 20일 만에 그의 전기가 모국어(영어)는 물론 한글 번역판까지 나와 버린 것이다!)
'전 세계가 호들갑을 떨다니, 뭔가 있는 게 분명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지만 좀 알아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도 생겼다.
그래서 책을 주문했다. 그런데 받아보니 920쪽이나 됐다.(어릴 적 보았던 할아버지의 목침?)
짬짬이 읽기 시작해서 지난 주말 끝냈다. 그가 떠난 지 6개월 만이다.
아이작슨은 책을 끝내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리하여 스티브 잡스는 우리 시대의 비즈니스 경영자 가운데 한 세기 후에도 기억될 게 확실한 인물이 되었다. 역사는 그를 에디슨과 포드에 버금가는 인물로 평가할 것이다."
그의 주장이 맞을지 틀릴지 지금은 알 길이 없다. 한 세기가 지나야 확인이 가능할 테니까.
그러나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에는 우리가 지금 당장 짚어야 할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이다.
책에서 잡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릴 때부터 항상 나는 인문학적 성향을 지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자공학도 무척 맘에 들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영웅 중 한 명인 폴라로이드의 에드윈 랜드가 한 말을 읽었어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에 관한 얘기였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애플의 탄생과 성공의 단초로 아이작슨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만남을 꼽는다.
잡스의 이런 성향이 '깊은 인간애가 흐르는 기술의 혁신'을 가능케 했고, 결국 애플의 탄생과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럼 인문학은 꼭 과학기술과만 만나야 하는 것일까? 금융과 만나면 안되는 것일까?(최근 보험 쪽으로 영역을 넒힌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니 지켜볼 일이다.)
둘째는 '단순히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닌 영속하는 기업'이다.
잡스에 따르면 최고경영자(CEO)는 크게 둘로 나뉜다.
'돈을 추구하는 쪽'과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쪽' 말이다.
애플 초기에 자신이 직접 영입한 존 스컬리를 잡스가 두고두고 혹평한 건 스컬리가 전자였기 때문이다.
그럼 돈을 추구하지 않고도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비법은 무엇일까?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이에 대한 잡스의 답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새로운 것(제품이든 서비스든)을 만드는 방식에 관한 것인데 잡스는 이렇게 말한다.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 방식이 아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고객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잡스가 옳다. 이 말에서 자유로운 건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전자기기든 금융이든 언론이든.
박종인 국장대우 겸 금융부장 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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