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따지지 않고 고졸도 대졸 공채에 지원, 채용사례도 늘어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열린채용'을 표방한 삼성전자의 대졸 신입 공채에 도전하는 고졸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력만 있다면 스펙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인사론'이 반영된 결과다.
20일 삼성은 오는 3월 둘째주를 기해 3급 신입사원 공채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올해 채용 규모인 총 2만6000명 중 상반기에 약 1만300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삼성은 신입 공채를 3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통상 3급은 대졸, 4급은 전문대졸, 5급은 고졸 생산직 공채를 뜻한다. 하지만 '열린 채용'의 결과로 이 같은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매년 고졸 출신들도 삼성 3급 공채의 문을 두드리고 있고, 수는 적지만 채용문을 통과해 대졸자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근무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일부 계열사 직군에 따라 전공분야를 특정짓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공채는 학력을 제한하지 않는다"면서 "일부 계열사의 경우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지원자들도 똑같이 채용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말했다.
고졸 A씨도 삼성 3급 공채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준비중이다. 5급 생산직 공채도 있지만 대졸자 못지 않은 소프트웨어 개발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도전에 나섰다.
신입 공채 요건 중 하나인 평점 3.0 이상이라는 부분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점 기준이 불명확하지만 고졸자의 경우 내신 점수를 4.5점 만점 기준으로 환산해 반영한다.
삼성 관계자는 "고졸의 경우 내신 점수를 대학 평점 4.5점 만점에 해당하는 비율로 환산, 적용하고 있다"면서 "합격 여부에 평점이 미치는 영향은 없고 SSAT 지원 자격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서류가 통과되면 SSAT를 본다. SSAT는 삼성이 자체적으로 고안해낸 시험으로 언어, 수리, 추리 3개 영역의 기초능력 검사에서 100문제 상식, 상황 판단력 측정을 위한 직무능력 검사 75문제로 구성돼 있다.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SSAT는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논리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폭넓은 지식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기초능력 검사의 경우 대졸자 수준의 문제가 주어지기 때문에 A씨는 별도로 1년 동안 준비해왔다.
직무능력 검사의 경우 A씨가 오히려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정해진 답보다는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일관성 있는 답변을 하는지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SSAT에서 상위 30% 이상 득점을 한 사람들은 면접에 참여할 수 있다. 면접은 총 3단계로 이뤄지며 매번 1시간 정도로 진행된다. 면접 역시 전공 및 학력과 큰 관계 없이 논리적인 사고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가장 먼저 인성면접은 사회, 정치, 문화에 대한 지식과 자신에 대한 장단점, 지원 분야에 대한 준비사항을 주제로 진행된다. 인성면접이 끝나면 프리젠테이션 면접을 진행한다. 주어진 3가지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해 10분 동안 정리해 발표하는 형식이다.
마지막으로 지원자 4~6인을 한 조로 구성한 집단토론 면접이 진행된다. 면접관이 아닌 면접자끼리 서로 의견을 나누며 논리력, 설득력, 의사소통 능력 등을 선보이고 이를 종합 평가하는 과정이다.
3단계 면접을 모두 통과하면 삼성에 입사하게 된다. 삼성은 3급 공채를 통과한 고졸들의 비중을 밝히지 않았지만 매년 일부 지원자가 일반 사무, 영업을 비롯해 개발, 디자인 부문에 합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관계자는 "3급 공채에 도전하는 고졸의 경우 예전에는 사무, 영업 부문에만 일부 합격했지만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디자인 부문에도 채용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고졸 출신 승진도 확대하고 있다. 실력만 있다면 임원 승진에 아무 문제가 없다. 5급 생산직으로 출발해 삼성전자의 임원까지 승진한 사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발탁 인사를 통해 상무로 진급한 삼성전자 김주년 무선사업부 상무도 그 주인공 중 하나다. 김 상무는 1986년 고졸 생산직으로 입사했으며, 1993년 무선 단말 개발에 합류한뒤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2회 수상하며 임원 승진에 성공했다.
김 상무 외에도 삼성에서 지난해 고졸 출신으로 임원 승진에 성공한 사람은 6명에 달한다. 지난 2010년 고졸 출신 승진자가 2명에 불과한 점과 명확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삼성 관계자는 "3급 공채로 입사하는 고졸 수가 많지 않지만 문턱을 두드리는 고졸자가 많은 만큼 채용 비중도 조금씩 늘고 있다"면서 "이와 별도로 마이스터고, 고졸 공채 등도 실시하며 '열린채용'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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