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폐암으로 사망한 유족이 국가와 KT&G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3민사부는 폐암으로 사망한 경찰공무원의 유족이 국가와 KT&G를 상대로 1억원을 배상하라고 낸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원고 측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날 "담배 제조나 설계상 결함이 있다고 인정하기엔 근거가 부족하고, 소비자에게 거짓된 정보를 줬거나 인체에 유해한 첨가물을 별도로 첨가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 "소비자보호법상 의무는 추상적인 의무로 구체적 권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공무원 박모씨의 유족들은 2000년 박씨가 사망하자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 측은 "사망원인은 폐암이며 폐암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담배이므로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에 유족들은 2005년 국가와 KT&G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사실상 폐암과 흡연의 인과관계가 입증된 만큼 이번 소송의 초점은 '흡연의 중독성과 담배회사의 불법행위가 관련 있는지'로 모아졌다. 담배는 장기 흡연을 유발해 폐암을 일으키는 위험한 물건인데, 제조업자가 사용상의 위험을 예방하거나 최소화시킬 주의 의무를 다했느냐는 것이다.
원고 측은 "우리나라의 담배 경고문구는 눈에 잘 띄지 않아 정부에서 규정한 흡연경고문구를 담배에 실었다는 이유로 담배의 중독성과 해로움에 대해 충분히 경고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대리인 법무법인 남산의 정미화 변호사는 "수영장을 관리인을 예를 들면, 단순히 위험하다는 표지판을 세웠다고 해서 안전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고 안전요원을 배치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책임이 있다. 담배도 마찬가지로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경고문구을 표기한 것만으로는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KT&G측은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담배의 유해성에 관한 원고 측 주장은 과장됐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흡연 피해자 개인이 정부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건 것은 지난 1999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앞서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폐암환자 김모씨와 가족 등 31명이 "30년 넘게 담배를 피워 폐암이 생겼는데 KT&G가 담배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는 등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국가와 KT&G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2007년 1심 판결과는 달리 흡연과 폐암의 역학적ㆍ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또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앞으로 별개 소송에서 담배회사 측의 추가 불법행위가 인정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원고 측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며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한편 담배 소송은 195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재판부는 1990년대 초반까지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중반 이후에는 전체 담배소송에서 원고가 이기거나 합의가 이뤄진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내부자 폭로로 제조사들이 흡연의 중독성과 위험성을 알고도 감췄다는 사실이 잇따라 불거지는 등 원고에게 유리한 증거가 밝혀지면서다.
2001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흡연자 그레디 카터가 담배회사 브라운 앤 윌리엄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손해배상금 109만달러를 지급할 것을 확정했다. 2006년과 2009년 소송에서도 원고 측 손을 들어주며 세계 최대의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에 각각 5550만달러, 7950만달러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밖에 1997년 브라질과 2002년 호주에서 각각 원고 승소한 사례가 있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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