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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만 쫓다 '진실' 놓친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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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검찰이 한명숙(67) 전 총리에게 2연패했다. 제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정치자금 수사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핵심 진술조차 제대로 간수 못 해 공판 중심주의의 벽 앞에 여지없이 무너졌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동시에 한 전 총리 무죄 선고의 뒷수습과 관련자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 방식에 대한 전면 재검토라는 과제도 안게 됐다.


◆ 공여자 '입'만 믿다가 다친 검찰=지난달 31일 한 전 총리에게 무죄가 선고된 '9억수수 의혹' 사건 재판은 진술에 의존한 수사의 한계에 대한 검찰 정치자금 수사의 교과서로 남겨질 형국이다. 물증 없이 제보자의 입을 쫓아 맞아 떨어지는 진술만 끌어 모아서는 법의 심판을 구할 수 없다는 단적인 교훈이다.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가 유일하게 증거로 받아들인 것은 첫 소환부터 법정에 서기까지 73회에 달하는 조사를 통해 작성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검찰진술 뿐이다.


애초에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한 전 대표의 입에서 시작됐다. 사기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통영에 수감되어 있던 한 전 대표를 서울로 옮겨온 검찰은 2007년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을 앞두고 한 전 총리에게 현금과 미화 등 모두 9억여원을 건넸다는 한씨의 진술을 토대로 혐의를 짜맞추는데 치중했다.

그러나 법정에 나선 무수한 증인들의 진술은 "'돈을 줬다'는 소문을 들었다"에 그쳤다. 결국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한 전 대표 이야기에, "돈 줬다던데요"라는 소문만을 덧붙여 증거로 내놓은 셈이다.


법원은 직접 보거나 들은 사실이 아닌 '카더라'통신을 전한데 그친 이야기들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전 대표의 진술마저 법정에서 "사실은 돈을 주지 않았다"고 번복되면서 검찰 주장의 신뢰성은 무너져내렸다.


◆ 믿을 수 없는 제보자=사건 당사자에게 일정한 수준의 법익을 약속하고 진술을 얻어내는 플리바게닝은 그간 검찰이 수사에 애용해온 수단 중 하나다. 제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불법 정치자금 수사의 특성을 감안하면 공여자의 입을 열기 위한 검찰의 회유 또한 적법한 수사방식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쫓은 진술이 법정에서 번복되면 수사의 근간이 통째로 흔들릴 위험을 안고 있다. 이번 사건 수사에서 플리바게닝이 적용 됐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무책임한 진술'의 위험을 안고 있는 이 방식에 대한 검찰의 근본적인 고찰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신빙성이 인정되면 그 자체로 공소사실을 무효로 만들 수 있는 한만호씨의 법정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임의성이 증거능력을 부정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유일하게 증거로 받아들인 검찰진술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검찰에 협조하는 진술을 하게 된 데에는 '수사에 협조하면 가석방 등의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남모씨와의 면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가석방을 들며 검찰수사에 대한 협조를 회유한 남씨가 앞서 한 전 대표를 감옥으로 이끈 분양사기 사건의 관련 자료 대부분을 쥐고 있던만큼 추가기소에 대한 두려움에 한 전 대표가 임의로 진술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한 전 대표의 진술을 토대로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는 9억원이 조성된 사실을 입증했을 뿐 해당 금품이 한 전 총리에게 건네진 정황을 입증하는데 실패했다.


◆ "물증 챙겨라"..머쓱해진 검찰총장=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과의 뇌물수수 재판에 이어 이번 불법 정치자금 재판에서까지 잇따라 무죄 선고가 나면서 궁지에 몰린 검찰은 재판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행보는 한상대 검찰총장의 취임 일성을 떠올리면 볼멘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총장은 취임 당시 "입에 의존하는 수사를 해선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는 일선 검사들에게 '사건 관계자의 진술이 아닌 보다 정확한 물증과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수사하고 기소하라'는 주문이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한 총장의 말에는 이번 사건과 같은 일에 대한 우려가 녹아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수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차원의 재정비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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