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조약을 체결ㆍ비준하고 … 선전포고와 강화를 한다.' (헌법 73조) '국회는 …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60조 1항)
미국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비준 절차를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 헌법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몇 번을 읽어봐도 그 뜻은 분명하다. 한ㆍ미 FTA와 같은 조약은 체결과 비준이라는 두 단계를 거쳐 성립한다. 조약을 체결하고 체결된 조약을 비준할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대통령이 실제로 이 두 권한을 행사하려면 그 각각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의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다고 하더라도 한ㆍ미 FTA는 태생의 위헌성을 벗을 수 없다. 그 '체결'에 대해 정부가 국회에 동의를 요구한 적도 없고, 국회가 알아서 정부에 동의를 해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ㆍ미 FTA는 헌법적 하자를 원죄처럼 갖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자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비준동의와 대통령의 비준을 거친 뒤 정부가 한ㆍ미 FTA를 발효시킨다면 '위헌의 사후 합법화'가 될는지는 몰라도 '원천적 위헌 시비'를 종식시킬 수는 없다.
법학자들이 다른 어떤 의견을 낸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고 상식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부 언론을 포함해 흔히 잘못 알고 있듯이 조약 체결은 정부가 하고 그 비준은 국회가 하는 것이 맞는다면 국회는 단 하나의 권한, 즉 비준권만 가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분명히 조약의 체결과 비준 둘 다를 대통령이 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러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대해 국회가 동의권을 갖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넓게 보아 조약의 협상 단계에서 국회가 관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헌법재판소에서 한번 다뤄진 적이 있다. 2006년 9월 여야 국회의원 23명이 '정부가 국회의 동의 없이 한ㆍ미 FTA 체결을 추진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7년 10월 '국회의원은 국회의 권한 침해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국회의 권한 침해를 주장할 자격은 국회의원에게 있는 게 아니라 국회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회 차원의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추진될 법도 했지만 당략 때문인지 태만 때문인지 그런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이 문제는 유야무야돼 버렸다.
그 뒤로는 이 문제와 관련해 국회의 권한을 보다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을 포함한 통상절차법 제정에 관한 논의로 정치권의 관심이 돌아가버렸다. 지난주 미국이 한ㆍ미 FTA 비준 절차를 마무리한 뒤에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통상절차법 제정 문제만 다시 이슈화됐을 뿐 한ㆍ미 FTA의 절차상 위헌 문제는 별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 한ㆍ미 대통령이 양국 정부 대표로 워싱턴에서 만나 외교적 세리머니를 이미 가진 뒤에 그런 국내적 문제를 다시 건드려봐야 골치만 아플 뿐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절차상 위헌 문제는 한ㆍ미 FTA가 막바지 비준 단계에 이르도록 국민적 지지에 이르지 못한 채 국론이 분열되고 졸속시비가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다. 헌법의 3권분립 원칙을 훼손하면서 독주하는 행정부를 국회가 당연히 견제하고 나서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ㆍ미 FTA를 '경제동맹'이라고 불렀지만 한쪽의 절차가 위헌적이라면 그 동맹이 튼튼할 수 없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행정부 독주를 시작한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그런 방식의 협상을 이어온 이명박 정권의 책임보다 더 크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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