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업체 독식, 양극화 심화
내년 상반기 이후 통합·퇴출 등 우려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글로벌 조선업계가 올 들어 상위 업체가 수주를 독식하는 쏠림 현상이 재현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8년 이전까지는 초호황을 배경으로 신생 조선사들이 대거 시장에 참여해 상위 업체의 비중은 매년 떨어졌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뒤바뀌며 가격 경쟁력을 갖춘 상위 업체만 수주를 독식하면서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불황기에 양극화 상황이 심화된다는 것은 통합과 퇴출 등의 구조조정이 벌이질 것이라는 신호다. 수주산업인 조선업종은 통상 2~3년치 일감을 미리 확보하기 때문에 당장 닥친 불황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조업물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하지 못할 경우 일감이 소진되는 해부터 문을 닫아야 하는 데, 상당수의 중소 규모 조선소들은 내년이면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내년 상반기 이후 국가·대륙을 불문한 조선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 하다고 전망했다.
조선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5년 조사대상인 600여 전 세계 조선소 수주 잔량중 10대 조선소의 비중은 40.8%에서 매년 하락하더니 지난해 12월말 32.1%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올 들어 이 비중이 상승세로 전환하더니 9월말 현재 34.6%까지 높아졌다.
30대 조선소 비중도 마찬가지다. 2005년 63.1%에 달했던 비중은 매년 떨어져 2009년 51.2%로 바닥을 찍었으나 올 9월말까지 54.7%로 상승했다.
9월말 기준 10대 조선소에는 한국이 7개, 중국이 3개 조선소가 등재돼 있으며, 30대 조선소에는 한국이 8개, 중국 14개, 일본 4개, 필리핀 2개, 대만과 브라질이 각각 1개가 속해 있다. 즉, 20여개에 달하는 한국과 중국의 대형 조선소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각 국가별 1~2개 조선소를 제외하면 나머지 550여개 조선소들이 금융위기 이후 수주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도체·자동차와 달리 조선소는 일거리 창출 및 산업 고도화를 위해 각국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설립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조선소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게 된다. 일감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유럽 조선업계가 정부를 통해 한국과 중국 조선업계가 불공정 거래를 한다며 통상 현안으로 다루려 하는 것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정부 관료들이 최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과 STX 등 국내 조선사를 방문해 자국 조선소 위탁경영을 요청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력이 떨어지는 조선소를 무작정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구조 조정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 조선업계가 업체간 합병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도 중소 조선사들에 대한 대규모 통·폐합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국가들도 한·중·일 3국이 추이를 지켜보며 구조조정 계획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며, 국가별·대륙별로 소수의 조선소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클락슨 보고서에 올라있는 30대 이후 조선소중 상당수 2009년 이후 수주를 거의 못해 3년전 수주한 일감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들 조선소들은 내년 상반기부터 하나 둘씩 조업 물량을 완전소진하게 될 것으로 보여 이 때부터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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