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미국의 경제 격주간지 포천이 최근호(10월 17일자)에 게재한 '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 리스트 가운데 12위에 오른 이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42·사진) 최고운영책임자(COO)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드물게 '잘 나가는' 샌드버그는 다른 여성들의 멘토로 곧잘 나선다.
샌드버그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역할모델로 떠오르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포천 기자의 질문에 "재계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점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여성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1981년 미국 대학 졸업자 중 절반이 여성이었다"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여성은 겨우 15명"이라고 지적했다.
샌드버그는 지난 5월 명문 여대 버나드 졸업식에서도 "남자가 여자보다 능력이 뛰어나 성공하는 게 아니라 야망이 커 성공하는 것"이라며 "직장에서 여성은 자기 실력을 과소평가한다"고 질타한 바 있다.
워싱턴에서 태어나 플로리다주에서 성장한 샌드버그는 수석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고교 재학 중 에어로빅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1991년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하버드 재학 당시 그의 논문 지도 교수가 래리 서머스다. 서머스 교수는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로 자리를 옮기면서 샌드버그를 대동했다. 샌드버그는 세계은행에서 서머스의 연구 보좌관으로 일했다.
199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수석으로 취득한 샌드버그는 컨설팅업체 매킨지에 잠시 몸 담았다. 서머스가 빌 클린턴 정부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샌드버그는 1996~2001년 재무장관 수석 보좌관으로 일했다. 샌드버그는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개발도상국의 부채 탕감 방안에 대해 연구했다.
이어 샌드버그는 구글 창업을 도운 에릭 슈미트의 권유에 따라 구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던 중 2007년 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만나게 됐다.
당시 저커버그는 COO를 영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구글 해외 부문 담당 부사장 샌드버그와 만난 순간 그가 COO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끈질긴 구애(?) 끝에 저커버그는 이듬해 3월 샌드버그를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그 동안 수익 모델 미비로 적자에 허덕였던 페이스북은 샌드버그 영입 후 3년 사이 가입자가 7000만 명에서 7억 명으로 늘고 매출도 급증해 지난해 2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샌드버그의 주도 아래 개발한 '소셜광고' 덕이다.
개인 공간인 페이스북을 유료화하거나 광고를 게재할 경우 사용자들로부터 반발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샌드버그는 친구들의 취향과 경험을 나누는 페이스북 고유의 특성에 맞는 광고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올해 페이스북의 광고 매출은 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샌드버그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잘 나가게 되기까지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 일을 하는 것, 그것도 잘하는 것"이라고.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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