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추석을 앞두고 '문전성시'를 이뤄야 할 재래시장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덩달아 올라야 할 매출도 오히려 줄어들어 상인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8일 기자가 찾은 서울 중랑구 우림시장에서 20년째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옥자(65)씨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추석을 며칠 안 남겨둔 지금이 물건이 가장 많이 팔릴 때인데 올해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김씨와 같은 재래시장 상인들의 이번 추석을 더 어렵게 만든 건 팍팍한 가계 사정과 큰 폭으로 오른 소비자물가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계빚은 876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CED)의 최근 경제통계 조사 결과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 전망은 3.5%로 24개 나라 가운데 21위였다. 가계 빚은 크게 늘고 저축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3년 만에 최고치를 보이며 5%대를 넘어선 8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가뜩이나 힘겨운 가계 사정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었다.
정부가 가계 부채 관리를 목적으로 시중 은행의 대출을 제한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새에도 혹시 손님을 놓칠까 가게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김씨는 "장사가 안되니까 돈은 없고 추석 물량을 맞추려면 돈은 필요하고 해서 대출을 좀 받으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며 "햇밤을 어렵게 비싼 돈을 줘가며 들여왔는데 아무래도 가격이 높다보니 사가는 손님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장사가 이렇게까지 계속 안되면 이젠 시장 일을 관둬야겠다고 까지 말하는 그다.
이날 우림시장에서 4인 가족 기준으로 차례상을 차리려 구입한 추석 제수용품 23개 품목의 값은 모두 15만9950원이었다. 이는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이 대형마트 36곳에서 같은 품목의 가격을 조사한 뒤 밝힌 4인 가족 차례상 평균 비용 23만8842원보다 8만원 가까이 싼 것이다. 그런데 값이 싸도 무용지물이다.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 자체가 눈에 띄게 줄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우림시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08년부터 운영해 온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이하 문전성시)'을 진행하고 있는 곳인데도 사정이 이렇다. 상인극단을 만들어 공연을 하고, 한 달에 한 두 번 문화 공연을 여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문전성시가 시작된 지난해 5월 이후 우림시장 유입인구는 일평균 5000명에서 8000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상인들이 체감하는 매출액엔 큰 변화가 없다. 유입인구가 수 천 명이 늘어도 매출이 제자리걸음인데 유입인구 자체가 많지 않은 시장의 형편은 어떻겠냐는 것이 김씨를 포함한 이 시장 상인 대부분의 말이다.
우림시장에서 20년 넘게 야채 장사를 했다는 강미선(55)씨는 "이 곳뿐만이 아니라 재래시장 전체가 지금 마이너스에 가까운 매출액 때문에 힘든 상황"이라며 "시장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도 하고 경기가 어렵기도 한 게 재래시장 불황의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추석을 코앞에 둔 시장 상인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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