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J는 사정 달라.. 엔高는 장기적 현상, 정치적 문제도 변수"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스위스가 자국 통화인 스위스프랑 강세를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가운데 이제 일본이 엔화 강세 저지를 위해 어떤 카드를 꺼내들 것인지로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부채위기 심화와 미국 경제침체 여파로 금융시장 투자수요가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스위스프랑과 엔화로 몰리면서 두 통화 가치는 8월 들어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폭등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은 6일 스위스프랑 환율을 유로당 1.20프랑으로 고정하고 프랑화를 시장에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발표 직후 스위스프랑 가치는 유로 대비 8.8%로 사상 최대 하락폭을 보이며 약세로 돌아섰고 이 여파로 엔화가치도 함께 하락했다. 최근 몇 주간 달러당 76.70~80엔선을 유지하던 엔·달러 환율은 이날 뉴욕외환시장에서 장중 달러당 77.73엔까지 상승했다.
스위스의 ‘돌출’로 일본의 계산이 복잡해졌다. 외환시장에서는 엔화가 잠시 약세로 돌아섰지만 안전통화 수요가 스위스프랑에서 엔화로 더 몰리면서 엔이 더욱 폭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고,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엔고(高) 방어를 위해 7일 금융정책회의에서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BOJ는 추가 완화를 내놓지 않았다. 이날 BOJ는 기준금리를 현행 0~0.1%로 동결하고 15조엔 규모의 자산매입기금과 35조엔 규모의 대출프로그램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마카베 아키오 신슈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BOJ는 이미 지난달 자산매입·대출프로그램 규모를 늘리며 통화정책 완화를 실시했기 때문에, 이달 또 추가조치를 내놓기보다는 일단 기존 완화의 효과를 검토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일본이 스위스의 뒤를 따를 수 없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스위스프랑이 최근 들어 적정가치에 비해 유독 절상된 것과 달리 엔 강세는 딱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BOJ의 자체 통계조사로 볼 때 일본의 교역상대국 물가를 감안한 실효환율 기준으로 보면 현재 엔화 수준은 지난 30년간 평균 수준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둘째는 BOJ는 SNB만큼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은 주요 서방선진7개국(G7) 회원국으로 변동환율 약속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일본 외환당국이 G7에 엔고방어 공조를 계속 촉구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오는 9~10일 양일간 G7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가 열린다. 재무상이었던 노다 요시히코의 총리 취임으로 새 내각이 막 들어선 상황에서 일본이 엔고 방어를 위해 단독 개입에 나서기에는 입장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의 관계도 변수다. ‘낮은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노다 내각은 대미외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우호 메시지를 보내며 주일미군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었던 것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야마모토 마사후미 바클레이즈캐피탈 외환투자전략가는 “현재 미 행정부가 달러 약세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엔 매도·달러 매수 개입으로 이를 뒤흔들 경우 미국은 불쾌하게 여길 것이며, 일본 정치권은 이를 피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능력과 의지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엔고가 현 수준으로 지속될 경우 하반기 수출기업 채산성 악화는 물론 대지진 재건을 통한 일본 경제 회복세도 크게 둔화될 것이기에 동기는 충분하다. 지출 가능규모 40조엔 정도로 추산되는 일본 재무성의 ‘엔 실탄’도 충분한 편이다.
FT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일본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의 최대 변수인 엔·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심화될 경우, BOJ가 정부 통화정책에 맞춰 완화정책 실시에 나설 경우, 하루짜리 개입으로 나설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FT는 엔고의 근본 원인을 고려할 때 이같은 시도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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