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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더 앤 차일드>│모성신화가 감췄던 엄마와 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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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더 앤 차일드>│모성신화가 감췄던 엄마와 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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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그 아이 서른일곱 생일이에요.” 그런 엄마가 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름조차 모르는 딸에게 37년간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고, 생일 선물을 사고, 그 아이 중심으로 도는 세상에서 살아왔던 여자가. 14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입양기관에 아이를 떠나보낸 카렌(아네트 베닝)은 평생 죄책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며 방어적이고 까칠한 여자로 살아간다. 그런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가시 돋친 그 여자의 여린 속내를 알아본 든든한 나무 같은 그가 말한다. 딸을 찾으라고. 만나고 후회한 다해도 지금의 후회보다는 나을 거라고.

“제겐 무엇보다 독립성이 중요해요. 그걸로 충분하죠.” 그런 딸이 있다. 생모의 얼굴도 모른 채 살아온, 17살 어린 나이에 스스로 임신의 가능성을 묶어버린 여자가. 엘리자베스(나오미 왓츠)는 명석하고 유능한 변호사이지만 지속적인 관계나 정착을 극도로 거부하는 탓에 계속 직장과 거주지를 옮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 사고처럼 아이가 생겼다.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을 품게 된 엘리자베스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름조차 모르는 엄마에게 생의 첫 편지를 써내려간다.<#10_LINE#>

영화 <마더 앤 차일드>│모성신화가 감췄던 엄마와 딸의 이야기


안아라. 그녀를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영화 <마더 앤 차일드>│모성신화가 감췄던 엄마와 딸의 이야기


‘엄마와 아이’라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를 품는 제목을 선택했지만 <마더 앤 차일드>가 집요하게 응시하는 관계는 정확히 ‘엄마와 딸’ 이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나인 라이브즈>등을 통해 다양한 여성의 삶을 한 땀 한 땀 세밀한 솜씨로 이어 붙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은 <마더 앤 차일드>에서는 직조력를 너머 놀라운 집중력을 선보인다. 그리고 엄마와 딸 그녀들 사이의 흐르는 두려움, 쉬이 눈치 채기 힘든 그 미묘한 긴장의 끈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혹시 무서운 적 없어요?” “저 아이가 유리처럼 깨어질까봐 무서운 적요? (웃음) 있어요. 가끔.” 사회적으로 부양의 역할을 해야 하는 남자에게 부성이 의무와 책임감을 동반한 감정이라면, 생물학적으로 출산과 수유를 해야 하는 여자에게 모성은 박탈감과 두려움을 동반한 감정이다. 세상은 헌신적이고 완성된 모성에의 신화를 강요하지만 사실 엄마들은 무섭다. 내 몸의 모든 것을 쪽쪽 누군가 앗아간다는 느낌, 나를 똑같이 닮은 아이가 내가 저지른 인생의 실수와 오류들을 똑같이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고,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딸은 끊임없이 두려운 존재다.


늙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카렌은 당신이 딸의 인생을 망쳐 미안했다는 말을 엉뚱하게도 집안일을 도와주던 여자로부터 전해 듣고 울부짖는다. “아주머니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요? 왜! 왜?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직접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줬던 거죠?” 냉정한 모정이 아니다. 할머니는 무서웠던 거다. 그렇게 정말 전하고 싶은 진심의 말들이 뒤늦게,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 의해 전달될 만큼. 카렌이 오랫동안 딸의 행방을 찾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첫 생리를 시작한 날도, 빗소리를 듣던 밤도 함께 있어주지 못한 내가 과연 너의 앞에 설 수 있을까? 아직은 엄마가 되지도 않았던 열일곱 엘리자베스의 공포의 근원도 같다. 한 번도 엄마의 사랑을 받고 살아보지 못한 내가 과연 자식 낳고 그 아이를 사랑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엄마들이 내뱉은 수많은 잔소리도 채근도 짜증도 혹은 무관심마저도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하고 아끼는 만큼, 그만큼 무서웠던 거다. 그들도 우리처럼. 그 여자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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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백은하 기자 one@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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