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의원 기자]
“쓰나미의 피해가 얼마나 엄청난지 느꼈다. 정부의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고 각료들은 전력을 다하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지진발생 다음날인 12일 헬기를 타고 현장을 둘러보고 난 뒤 소집한 긴급재해대책본부 회의에서 이 같이 지시했다.
일본을 뒤흔든 사상 최악의 지진은 정치생명이 위기에 처했던 간 총리를 되살리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4일 전했다.
차기 총리로 유력했던 마에하라 일본 외상이 정치 헌금을 받아 물러난데 이어 간 총리도 재일교포로부터 정치헌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해 사퇴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대지진이 발생하자 그는 현장을 진두지휘하면서 국민 지지를 다시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블룸버그 통신은 간 총리 정부의 성공은 그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 위기라고 한 이번 지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간 나오토 총리는 10선 중의원으로 지난해 6월 일본 총리로 취임했다. 8개월여 만에 중도하차한 하토야마 총리를 대신해 현재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권 초기 과반수가 넘는 지지율로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것도 잠시, 악재가 겹치며 그의 지지율은 급속히 떨어졌다.
아사히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간 총리의 지지율은 20% 미만이다. 지난해 9월 그가 내각을 꾸렸을 때 지지비율이 67%였던 것을 감안할 때 큰 낙폭이다. 지진 발생 전 그의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62%로 초기 지지 비율에 근접했다.
국민의 성원을 등에 업고 출발한 간 총리의 고난은 이미 예고됐다. 간 총리는 정권 초기 미·일 외교 정책 혼선과 정치자금으로 물러난 하토야마 총리와 다른 정책을 폈다. 그렇지만 그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너무 많았다.
우선 후텐마 기지 이전 사건으로 땅에 떨어진 미·일 동맹을 회복시켜 양국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는 게 급선무였다 . 또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이 정치자금을 관리해 물러난 만큼 국민들의 신뢰도 회복해야 했다. 그러나 소비세 인상발언으로 집권한지 한 달만에 있었던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절반에 못 미치는 의석을 확보해 집권여당의 입지가 줄어드는 수모도 겪었다.
이웃 나라인 러시아와 중국과 관계도 불편하다. 러시아와는 쿠릴열도(일본 훗카이도 북쪽 4개섬)를 놓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고, 중국과는 이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경제는 골병이 들어있다. 1990년대부터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다. 국가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가부채는 201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의 200%에 육박한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일본의 부채를 이유로 들어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실업률도 하락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4.9%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사상최악의 대지진이 닥쳤다. 국가 최대 위기 사태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퇴진할 것인지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도약할 수 있을지는 그가 하기 나름이다. 현재까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위기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간 총리가 처한 상황을 2005년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카트리나 사태 당시 부시와 비교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사태 당시 미흡한 대응을 해 지지율이 급락했다.
간 총리도 마찬가지다. 이번 지진 사태를 수습하는데 서투른 대응을 한다면 그는 물론 그의 정권은 회생할 여지가 없다. 반면, 현재처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애나 블리 퀸즐랜드 호주 주지사처럼 국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호주 퀸즐랜드 홍수 당시 상황을 진두지휘한 블리 주지사는 현재 60%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당시 블리 주지사는 사태 초반 밤 10시까지 매 2시간 마다 기자회견을 열어 상황을 지휘했다.
위기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오쿠무라 준 고문은 “지금은 간 총리의 카트리나 순간”이라면서 “그는 약한 지도자가 아니고, 현재 그가 주목할 만한 점은 야당은 이전과 같이 반대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캔버라 소재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의 일본정치학 교수 아우렐리아 조지 멀갠은 “이번 지진이 간 총리를 정치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만약 간 총리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면 끝”이라고 경고하면서 “이번 위기는 간 총리 내각을 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의원 기자 2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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