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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화한 한국 대학의 현실 '대학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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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 박은희 기자, 이민아 기자]대학 주식회사.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기업'이라는 사실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대학들이 학교 운영과 교육 그리고 연구 등 중요한 분야에서 빠르게 기업화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탓이다. 지난 1월 부산에서 열린 대교협 정기총회에서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의 대화에 나선 총장 10여명은 모두 등록금, 재정지원, 대학평가, 해외학생 유치 등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계간지 '역사비평' 지난 가을호는 '대학의 붕괴-기업화, 서열화, 지성의 몰락'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대학의 문제점을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이 책은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시절인 2004년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대학이 전인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소리는 이미 옛 이야기다. 이제는 '직업교육소'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고부응 중앙대 교수는 '한국 대학의 기업화'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미국 대학을 맹목적으로 쫓아가면서 나타난 현상임을 짚는다. 전 세계 대부분의 대학이 국ㆍ공립 형태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미국 대학은 사립대학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때문에 재정 확충을 위해 기업의 입맛에 맞는 연구ㆍ교육을 제공해 기업의 돈을 끌어들이거나, 아예 스스로 기업이 되어 돈을 버는 길을 택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대학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지역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실용학문ㆍ경제성 추구, 취업 강조 등으로 대표되는 대학의 기업화는 지식의 변화속도가 빠른 시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추세"라며 "경제학을 예로 들어도 단순히 학문으로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이나 전자공학과 결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 최근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또 대학의 자금으로는 연구비 조달이 불가능하고 기업의 무조건적인 기부금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산학협력연구 역시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제는 기업연구 수주를 잘 따내는 교수가 유능한 교수라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건국대 차세대 태양 에너지전지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임찬 물리화학과 교수는 "연구소도 결국 비즈니스이며 돈을 벌어야 월급을 받고 살 수 있다"며 "학교에서는 공부만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이뤄질 수도 없고 벗어나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20년 이상 재직하신 50~60대 교수님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크고 작은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흐름은 결국 학생들의 연구와 학업에도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 이공계 석사 과정의 원 모 학생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9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는 연구실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한다기보다는 교수님 밑에서 연구실 직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해 학생들의 학비를 대주고 학생들은 그 연구 과제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이 일상화된 것이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이런 변화는 대학 본연의 기능인 교육의 틀도 바꾸고 있다. 길러내는 학생들도 '실용형' 인재여야만 한다는 판단의 결과로 중앙대와 성균관대가 대표적이다.


중앙대는 오는 2012년까지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학문 단위 구조조정을 내실 있게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쉽게 말해 세상이 원하는 학과는 만들고 시대에 뒤처지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과는 과감하게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18개 단과 대학, 77개 학과를 10개 대학, 46개 학과로 개편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외국어 대학의 독어학과, 불어학과가 폐지됐고 사회과학대학 공공 정책학부 역시 사라졌다. 일본어문학ㆍ중국어문학ㆍ비교 민속학은 아시아 문화학부로, 독일어문학ㆍ프랑스어문학ㆍ러시아어문학은 유럽문화학부로 통합됐다. 이런 한편에서는 실용학문의 성격이 강한 경영학부(글로벌금융), 융합공학부와 국제물류학과의 신설이 이어졌다.


중앙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들도 비인기학과의 정원을 줄이고 실용학과를 개설하는 노력을 조용히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대학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균관대의 경우 삼성전자와 연계된 계약학과인 휴대폰학과 개설로 유명하다. 이제 이런 흐름은 다른 대학들에도 퍼졌다. 한양대의 경우 나노반도체공학과는 하이닉스와 소프트웨어전공은 삼성전자와 계약을 맺고 있다. 건국대 미래에너지학과는 코오롱과 전남대 중화학플랜트공학과 여수 광양권기업체들과 연계돼 있다.


이런 계약학과는 지난 2년 새 77%나 늘었다. 지난 2008년 채용조건형 3개교 4개학과, 재교육형 43개교 148개 학과이던 계약학과가 지난해에는 채용조건형 6개교 17개학과, 재교육형 68개교 252개 학과로 늘어났다.


이런 흐름은 스타교수와 시간강사라는 음울한 구도를 빚어내기도 한다.


최근 국내 대학들은 해외 석학이나 스타교수 초빙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포스텍은 오는 2020년까지 500억원을 들여 노벨상ㆍ필즈상 수상 석학 10명을 전임교수로 초빙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세계수준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석학을 국내 대학에 유치해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WCU 사업에는 5년 동안 총 8250억원이 투입된다.


반면, 이런 뒤켠에는 대학 강의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도 열악한 처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의 현실이 여전하다. 사회통합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7만 여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이 교양과목의 51%, 전공과목의 36%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시간당 강의료는 평균 3만6400원에 불과하고 주 9시간 근로 기준 평균 연봉은 999만원이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유재원 건국대 기획처장은 "대학은 공공성 높은 교육기관이지만 학생들의 취업이 화두가 되면서 어쩔 수 없는 변화를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국대의 경우 재단 소유의 학교 부지를 용도 변경해 '스타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해 수익을 창출, 대학의 재정에 보태는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다"면서 "등록금만으로는 학교 운영이 힘든 상황에서 연구비, 수익사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원을 확보하려 고군분투하는 것이 대학의 이면"이라고 덧붙였다.




김도형 기자 kuerten@
박은희 기자 lomoreal@
이민아 기자 m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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