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졸업해서 '아쉬운' 77세 老학자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1초

[아시아경제 정준영· 박은희 기자] 77세 노(老) 학자 이근후(사진) 박사는 졸업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배움을 일단락 짓는 게 싫어서다. 이 박사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이골이 났을 법한 공부에 아직도 아쉬움을 느끼는 그는 지난 19일 열린 고려사이버대학교(총장 김중순) 학위수여식에서 문화콘텐츠 학사 학위를 받아 길고 긴 '가방끈'을 기어이 늘인 최고령 졸업생이다.


이박사를 끝없는 배움의 길로 이끈 건 봉사와 희생에 대한 신념, 여기에서 우러난 무한한 지적 욕구다. 쉼 없이 탐구하고 배우는 일은 그를 '실버'가 아닌 '청춘'으로 묶어뒀다. 배움에 중독된 이 박사를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영동 (사)가족아카데미아에서 만났다. 이 박사는 의료ㆍ교육 봉사 단체 가족아카데미아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졸업해서 '아쉬운' 77세 老학자
AD



배울 만큼 배운 그가 다소 엉뚱하게도 사이버대학에, 그것도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문화콘텐츠학에 기울인 관심은 30년 가까이 진행해온 의료봉사와 관련이 깊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 박사는 의학도가 되기 전부터 꿈꾸던 히말라야 등반 기회를 산악회 학술요원 자격으로 1982년 우연히 얻었다. 학술조사차 6개월 동안 마을을 둘러보고 히말라야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이 박사는 당시 네팔의 열악한 의료 환경에 충격을 받았고 즉각 현지 봉사활동을 다짐했다. 이후 이 곳을 '내 집'처럼 오가며 고된 봉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박사의 '봉사 철학'은 '나눔'으로 요약된다. 이 박사는 "봉사란 대등한 위치에서 나눔에 대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일 뿐, 일방적으로 베푼다는 건 문화적 우월감에서 오는 오해"라고 말한다. 문화엔 경ㆍ중이 없고 '어느 문화가 어느 문화보다 더 낫다'고 말 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이런 그에게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일은 숙명이었다. 이 박사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속한 지역의 문화, 이에 따른 시대나 환경, 가족,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봉사를 하면서 네팔 문화를 체계적으로 깊고 심오하게 알고픈 욕심이 생겼는데, 결과적으로는 전공선택과도 맞닿아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봉사는 문화적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역할을 나누는 것이라는 원칙이 있었다. 따듯한 마음이 자칫 무거울 수 있던 수 십 년 발걸음을 경쾌하게 이끌었다. 여기에서 비롯된 학업에 대한 커다란 욕구가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게 만들어주는 힘이 됐다.


이 박사가 문화를 공부한 건 네팔과의 '교감'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군의관이던 1968년, 이 박사는 광명보육원 아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가 돌보던 아이들 상당수는 고아가 아니라 부모한테 버림받은 위기가정 아이들이었다. 이들의 아픈 경험은 치유가 어려운 깊은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이 박사는 "정서에 자리잡은 병, 감정에 난 상처는 이성적인 접근보다 예술에 의한 정서적 접근을 통해 마음을 이해해야 고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런 기억을 토대로 그간 친분을 쌓아온 문인들과 함께 1995년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했고 2005년에 사단법인으로 전환시켰다. 이 단체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보육원 봉사다. 이 박사가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이기도 하다.


원격 시스템으로 언제 어디서든 강의가 가능한 사이버대학 특유의 교육 과정이 무척이나 참신하게 느껴졌고 학생들 가르칠 때 활용해보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나기도 했다는 이 박사에게 고정된 배움의 영역은 없는 듯했다.


사람을 이해하려 끊임 없이 배울 거리를 찾는 이 박사의 '노년'은 더 배울 게 없어져야만 시작될 것 같다. 막내 아들이 전공한 독립영화를 배워보고 싶다는 그가 언젠가 연극영화학으로 다시 한 번 학사모를 쓸 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머릿속을 스친 이유다.




정준영ㆍ박은희 인턴기자 foxfur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