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박해일은 고집이 세 보이는 배우다. 타협을 모른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기의 확신을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 옳지 않은 것에 분명히 부정의 뜻을 밝힐 수 있는 사람. 이를테면 부드러운 외면 속에 강한 내면을 갖고 있는 배우랄까.
영화 '심장이 뛴다'의 박해일을 아시아경제 스포츠투데이 취중진담에 초대했다. '심장이 뛴다'에서 박해일의 뛰어난 연기를 보고 술 한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극중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뇌사상태에 빠진 어머니에게 뒤늦게 효도하려는 양아치 청년으로 등장한다. 심장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중산층 싱글맘 김윤진과 갈등하는 인물이다.
선한 겉모습과 달리 박해일의 양아치 연기는 꽤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다가간다. '심장이 뛴다'의 흥행에 그가 꽤 큰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영화에 대한 만족감인지 박해일은 '음주'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평소 술이 센 편이 아니라는 그는 기분 좋게 맥주 세 병을 슬금슬금 해치우며 대화를 채워나갔다.
- 영화 데뷔한 지 이제 10년째다. 배우로서 어떤 위치에 와 있는 것 같나?
▲ 물리적인 시간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분명히 생각은 더 많아진 것 같다. 생각 때문에 멈출 수는 없는 입장이고 지금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생각해야 하는 시기다.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면서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단거리로 승부를 낼 것도 아닌 것 같고. 슬슬 뛰다가 이제 땀도 나고 후끈해졌으니 속력 좀 내볼까 생각하는 시점인 듯하다. 지금 나 자신을 평가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 대중이 박해일에게 바라는 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 영화적으로 스크린 위에 보이는 내 모습이나 이미지에 민감해지고 싶지는 않다. 대중의 의사를 존중하지만 내가 앞으로 할 일을 해나가는 게 먼저인 것 같다. 영화란 건 당연히 많은 관객과 소통하려고 만드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고 관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반복되면서 깊어지는 생각은 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냇물에서 시작해 바다까지 계속 가고 싶다.
- 이미지와 다른 역할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번 영화도 그렇고.
▲ 나 자신이 재미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진짜 재미없다. 그러다 보니 영화적으로 재미있게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이다. 재미가 없는 인상이다 보니 작품 선택할 대는 현실의 기운을 떨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곤 한다. 욕망에 대한 에너지인 것인데 그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돼버렸다.
- 김윤진과 처음 연기했는데 느낌이 어땠나?
▲ 낯설었다. 아무래도 전작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미국드라마 '로스트'가 많이 생각났다. 김혜수 전도연 배종옥 염정아 등 멋진 여자 선배들과 많이 해봤지만 김윤진 선배는 그들과는 다른 지점이 느껴졌다. 김윤진 선배는 미국에서 6년간 한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다.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면 굉장히 긴 지점인데 그게 한 배우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지 않나. 우리는 3개월 반에 촬영이 끝났는데 분명 큰 차이다.
- 그래서 어떤 차이가 있던가?
▲ 해외 각국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다국적 스태프가 현장에서 모여 촬영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김윤진 선배의 느낌이 어땠을까 하는 단순한 궁금증이 있었다. 다른 어떤 것이 있을까? 월드스타라 부담도 있고 기대도 됐다. 해외에서의 경험이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궁금했다.
현장에서 보니 굉장히 효율적이더라.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으면서 순간적인 몰입이 강했다. 준비해온 걸 한 번에 확 쏟아내는 느낌이 나와는 많이 달랐다. 보고 느낀 게 많이 달랐다. 자연인 김윤진은 현대 여성의 리더이자 롤 모델 같은 사람이다. 어디에 기대지 않는 캐릭터다. 이성에 기대지 않고 홀로서기가 가능한 여성이고 시대에 맞게 잘 표현하는 것 같다.
- 박해일이라는 자연인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안정감보다는 뭔가 불안한 느낌이랄까.
▲ 일상이 불안하다. 약간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 배우로서 힘이 되기도 하고 단점도 있다. 그것 때문에 더 힘을 내기도 하고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 10대 시절엔 별로 방황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 서울에서 살면서도 초등학교 2학년까지 목장에서 소와 돼지를 키우며 자랐다. 도심에서 5분만 가면 산이 있는 독특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무던함 속에 치열함도 있고 간극이 크다. 일상생활이나 사회적 활동을 할 때도 그렇다. 나름의 방황도 있었다. 연극할 땐 더 심했다. 20대 초반에 집을 나왔고 연극을 하면서 생각도 많아지고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경험과 기운이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심장이 뛴다'의 휘도도 풍족하게 자란 친구가 아니다. 치열하게 생존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가고 동감이 됐나 보다. 결국 청춘의 방황과 불안한 시점에 방점을 찍고자 하는 마음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됐다. 청소년 시기에 방황을 시작해서 안정되지 않고 불안한 시절을 보냈지만 이젠 그걸 마무리하고 싶다. 아버지가 됐다는 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 아내를 잘 챙겨주는 편인가. 남편으로서 몇 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나.
▲ 시간이 없어서….(웃음) 그때그때 다르다. 작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는 좀 당황스러워 하기도 한다. 점수는 잘 모르겠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필요성은 느낀다. 해줘야 할 것도 많은데 늘 까먹는다. 메모해야 하는데…. 점수는, 정말 못 매기겠다. 하하.
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 kave@
스포츠투데이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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