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사자성어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즐겨쓰는 메시지 전달 방법이다. 짧지만 함축적인 사자성어로 CEO의 경영철학이나 한 해 경영목표를 굵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서부터 기관장, 기업 CEO에 이르기까지 새해를 여는 시점에서 사자성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언제부턴가 유행이 됐다.
올해 금융계는 그 어느 때보다 굵직한 이슈가 많았다. 1년 여를 CEO리스크로 허송 세월 한 KB금융지주는 새 수장(首長)을 맞아 본격적인 담금질을 시작했고 '금융의 삼성'으로 불리던 신한금융지주는 경영진 내분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로 수렁에 빠져 돌파구를 찾고 있다.
민영화 문제가 화두였던 우리금융지주는 지난달 26일 매각 입찰참가의향서(LOI) 접수를 마감하면서 이제서야 첫 단추를 뀄다. 하나금융지주는 세간의 예상을 뒤집고 외환은행 인수자로 나서 뉴스의 중심에 서 있다.
사자성어로 올 한해 금융권을 들여다봤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작업은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았다. 꾸준히 우리금융에 러브콜을 보냈던 하나금융은 일찌감치 외환은행 인수의지를 밝혔던 호주 ANZ은행을 제치고 인수계획이 알려진 지 열흘도 안된 지난달 25일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의미의 성동격서(聲東擊西)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은 올해 초 임직원에게 제하분주(濟河焚舟)의 각오를 주문했다. 제하분주는 적을 치러 가려고 배를 탄 후 물을 건너고 나면 그 배를 태워버린다는 뜻으로 비장한 각오를 의미한다.
신 사장은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해 공격적인 태도를 주문한 것이지만 '신한금융 사태'가 신 사장에 대한 신한은행의 고소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맞대응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면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신한 사태는 점입가경(漸入佳境), 고립무원(孤立無援), 단계를 넘어섰고 직무대행 선임 한달을 지낸 류시열 신한금융 회장은 공평무사(公平無私)를 강조하며 백척간두(可考文籍)의 신한금융에 대한 수습에 나서고 있다.
KB금융을 상징할 만한 사자성어로는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꼽을 수 있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지난 7월 취임 일성에서 KB금융을 '비만증을 앓는 환자'에 비유하며 환골탈태의 결연한 변화를 강조했다.
이후 3000여 명이 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감하고 연말 조직개편, KB카드 분사 등을 통해 비만치료 프로그램 구축을 매듭지을 계획이다. 어 회장은 아무런 사심 없이 솔선수범하며 소통하는 변화와 혁신의 리더가 되겠다며 공선사후(公先私後)를 좌우명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민영화를 앞둔 우리금융의 올 한해는 유소작위(有所作爲)가 어울린다. 유소작위는 해야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 뜻을 이뤄낸다는 의미로 중국 외교부장이 도광양회(韜光養晦), 겸허저조(謙虛低調)와 함께 중국의 외교원칙을 이들 사자성어로 요약하기도 했다.
최대 숙원인 민영화를 위해 우리사주조합원 1만7000여 명이 청약에 참여, 8% 이상의 지분인수를 가능케 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올해 사상 최대 순이익 달성과 개인금융 고객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윤용로 기업은행장이 신년에 내놨던 사자성어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기업은행의 현재 모습과 잘 맞아떨어진다.
단점은 버리고 장점은 취한다는 뜻의 사단취장(捨短取長)을 강조한 윤 행장의 말처럼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면서도 개인금융 부문에서 눈부신 성과를 일궜다.
김민진 기자 asiak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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