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충무로포럼] 최소품질표준제의 함정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7초

[충무로포럼] 최소품질표준제의 함정
AD

소비자들은 매일매일 수없이 많은 상품을 구입해야만 한다. 적절한 상품을 고르기 위해 정보를 찾지만 사실 소비자에게 주어진 상품 정보는 그리 충분하지 않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그저 상품 겉면이나 포장에 기재된 표시에 의존한다.


그러나 표시할 수 없는 상품의 속성도 있다. 예를 들면 특정 식당의 음식이나 커피의 맛 등으로 '경험재적 속성'이라 부른다. 이는 구입하기 전에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며 먹어본 후 혹은 사용해 본 후에나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표시나 사용으로도 소비자가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상품의 속성도 있다. 식품의 영양가나 약품의 효능, 진료서비스 수준 등과 같은 '신뢰재적 속성'이다. 이런 명칭이 붙여진 이유는 믿을 만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그저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신뢰재적 속성에 대해 판단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신뢰재적 속성이 품질 수준의 우수성을 판단하는 차원이 아니라 안전성과 직결될 때는 신체적 위해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최소품질표준'이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최소품질표준'이란 최소한의 안전성 수준을 설정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상품만 시장에 공급되도록 하는 제도로, 소비자에게 상품의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매우 긴요한 장치다. 각종 상품의 안전기준이나 의사의 면허제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도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면허제도의 최소기준이 필요 이상으로 높을 경우 이는 바로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는 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소기준이 필요한 것보다 낮을 경우에는 아예 안전장치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의 품질 수준을 최소 수준으로 설정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또 이런 부작용의 가능성 때문에 최소품질표준이나 영업허가제는 시장에서 그 범위를 최소한으로 정하게 된다. 즉, 안전성의 확보가 매우 긴요한 의료서비스, 자동차 부품, 의약품 등의 경우에만 최소품질표준(또는 면허제도)을 도입하게 된다.


그렇다면 최소품질표준이 필요 이상으로 높게 설정되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기존 사업자 집단이 이를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억제하는 장벽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유인이 있을 경우 가능하다. 최소품질표준의 도입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면 소비자는 적절한 양의 서비스 공급을 받을 수 없고 선택권도 제한돼 결과적으로 제도 도입의 취지도 훼손된다.


그럼에도 우리 시장에서는 이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역설적 현상이 쉽게 발견된다. 안전성이 문제되지 않음에도, 즉 굳이 면허가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조차 소비자의 안전성을 담보로 면허제도를 강하게 적용하는 상품군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시장에서 그 수준이 적절한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이를 감시해야 하는 정부 등은 전문적 정보를 갖지 못한 반면, 감시 대상인 해당 산업은 상품과 관련된 가장 전문적인 정보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 제도의 취지만 부각해 도입을 서두를 게 아니라 제도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작업 또한 최소품질표준 제도의 도입과 함께 반드시 수행돼야 하는 조치다. 다시 말해 정부의 진정한 역할은 최소품질표준이나 영업허가제가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는 제도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시아경제 증권방송] - 3개월 연속 100% 수익 초과 달성!

여정성 서울대 소비자아동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