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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주니어 訪韓]5대 걸친 의료·교육·자선활동 꽃 피워

[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미국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일컬어졌던 석유왕 존 D. 록펠러는 1839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20살때 친구와 함께 상사(商事)를 설립해 일하다 24살에 클리블랜드에 문을 연 정유소가 번창한 것이 석유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1870년에는 자본금 100만달러 규모의 주식회사를 만들고 오하이오에 '스탠더드석유회사'를 창립했다.


사장으로 취임한 존 록펠러는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10여년 만에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하는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조직해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이후 미국 뿐 아니라 해외에도 유전과 정유소를 설치하면서 '록펠러 왕국'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부를 일궜다.


이 과정에서 거대 독과점 기업을 구축한 냉혹한 사업가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재계에서 물러나 자선사업에 몰두하면서 청교도적인 삶과 막대한 기부로 찬사를 받게 된다.

존 록펠러는 시카고대학 설립을 위해 6000만 달러이상을 기부하고 그 후에도 3억5000만달러를 더 보탰다. 록펠러재단, 일반교육재단, 록펠러의학연구소 등을 설립하기도 했다.


존 록펠러는 냉혹한 비즈니스와는 달리 근검 절약과 근면, 성실한 사업가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십일조 원칙을 지켰고 평생 일기를 쓰듯 개인 회계장부를 쓰고 금욕적으로 생활했다.


외아들인 록펠러 2세는 물려받은 재산을 다 쏟아부을 정도로 자선ㆍ의료ㆍ교육ㆍ문화사업에 꽃을 피웠다. 록펠러 3세, 넬슨, 로렌스, 윈스롭, 데이비드 등 록펠러 가문의 손자들은 미국 정ㆍ재계를 장악했다.


특히 차남 넬슨은 대통령보좌관, 뉴욕주지사, 부통령을 역임했으며 3남 로렌스는 항공업과 원자력사업에 뛰어듬과 동시에 초기 환경운동의 중심인물이 된다. 4남 윈스롭은 아칸소주지사로, 막내 데이비드는 체이스맨해튼 은행의 운영자로 활동하게 된다. 록펠러 4세는 웨스트버지니아주 상원의원으로 활약했다.


본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록펠러 주니어(록펠러 5세)는 이러한 가문의 피를 물려받아 왕성한 사업가적 기질과 자선활동, 사회공헌활동을 동시에 펼치고 있다. 록펠러 주니어는 페이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공공ㆍ민간 매니지먼트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골프와 스키, 글쓰기와 야외활동을 즐기며 딜플로우(deal flow)를 통해 상업적 '그린 에너지' 프로그램을 자선활동과 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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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기자 asiakm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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