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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국 백신프로젝트]'장외마권'..레저는 없고 베팅만 있다

'도박·게임중독 더 이상 안 된다'
건전 한국 백신 프로젝트<5>
'지금 스크린경마장에선…'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지난 해 12월13일 오전 11시께 서울 영등포구에 자리한 스크린 경마장. 이른바 '큰 게임'인 과천경마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주말과 휴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는 규모가 큰 과천경마가, 다른 때에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부산경마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마권을 손에 든 사람들이 스크린에 인접한 좌석을 가득 채웠다. 좌석 주변 빈 공간과 멀찍이 떨어진 계단 근처에까지 사람들이 들어차 있어, 단순히 '만석'이란 말로는 열기를 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경기 시작 시간이 임박할수록 몰라보게 차분해졌다. 사람들은 옆 사람과 귓말을 하며 소곤대기 시작했다. 눈동자는 마권과 옆사람, 스크린을 향해 술 새 없이 굴렀다.


경기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진지모드'에서 '열광모드'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배팅한 말이 뒤쳐지면 스크린 코앞까지 다가가 삿대질을 하고, 마치 기수라도 되는 양 열을 올린다. 말 타는 모션까지 취해가며 '응원'을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두터운 트레이닝복차림에 방한 모자를 눌러쓴 A(44ㆍ남)씨는 경기 직전 웃옷을 벗어 허리에 둘러묶은 뒤 반팔 차림으로 응원에 나섰다. 바깥은 한겨울인데 얼굴까지 붉게 타올랐다.그는 "스크린 경마장에 매 주 온다. 과천까지 가는 건 어려우니까. 멀리 가지 않아서 편하고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허탕을 쳤다. 경기가 끝난 뒤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지금 '보호소(자활센터)'에 있는데, 이래저래 용돈 몇 푼씩은 생기거든요. 그러면 거의 다 여기(스크린 경마)에 쓰지요. 여기 오면 안 되는 데, 못 끊어요. 힘듭니다 끊기가. 중독자 맞죠. 카드도박부터 안 해본 도박이 없는데, 저는 경마에 제일 심하게 빠지더라구요. 더구나 이렇게 가까이에 경마장이 있으니까, 어떻게 끊겠어요"라고 덧붙였다.


A씨는 다음 경기 마권을 사려면 '연구'좀 해봐야겠다며 스크린 앞으로 돌아갔다. B(37ㆍ남)씨도 A씨 만큼은 아니지만 열정이 대단했다. 연습삼아 2000원 배팅했다는 그는 "더 큰 돈도 잃을건데 2000원 잃는 거 가지고 아쉬워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 역시 자신이 중독자임을 완곡하게 인정했다.


B씨에겐 스크린 경마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까. "취미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독자도 많겠죠. 차라리 과천 가는 사람들은 그냥 바람 쏘이러 가는 것일 수도 있어요. 공원도 좋고. 그런데 여기 오는 사람들은 정말로 도박하러 오는 거 아니겠어요? 경치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배팅만 하는 건데"


정식으로는 '장외 발매소'라 불리는 스크린 경마장은 실제 경기장에 가지 않고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보며 배팅을 하는 장소다. 현재 전국에 30여개 스크린 경마장이 영업 중이며 한 해 3000만 명 가량이 이 곳을 찾는다. 매출은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스크린 경마장이 이처럼 큰 수익을 내다보니 지방자치단체들도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당초 기대와 달리, 스크린 경마장은 지자체에겐 '황금알을 낳는' 효자 산업으로, 도박 중독자들에겐 제2의 유혹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 곳을 찾는 사람 중 상당수가 스스로 인정하는 중독자이며, 스크린 경마를 철저하게 '도박'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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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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