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호국인물 선정
$pos="L";$title="";$txt="";$size="175,207,0";$no="2010022510101434377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3월의 호국인물에 장인환 선생이 선정됐다.
전쟁기념관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친일파 처단에 앞장선 장인환 선생을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25일 밝혔다.
1876년 3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장인환선생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학업을 중단하고 어렵게 지내다 1904년 하와이 노동이민으로 이주했다. 2년 후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1907년 한인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에 가입했다.
1908년 3월에는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이던 미국인 스티븐스이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한국침략 정당화 망언을 쏟아내자 보도정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한국의 인민은 우매해 독립할 자격이 없다”는 등 망언을 해 처단을 결심했다.
그해 3월 23일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 페리역에 도착한 것을 본 선생은 거사를 벌이는 순간 또 다른 한국인 청년 전명운이 먼저 스티븐스를 저격했다. 하지만 전명운의 저격이 불발됐다. 이에 장인환선생은 스티븐스의 등에 두발을 명중해 사살했다. 이 저격사건은 한국 독립운동에 불을 당기는 것은 물론 안중근, 이재명, 윤봉길 의사의 거사로 이어졌다.
장인환 선생은 미국법정에서 280일간 공판 투쟁끝에 25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동포사회의 석방운동으로 10년만인 1919년 1월 가석방됐다. 1927년 잠시 귀국한 장인환 선생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1930년 5월 22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병원에서 55세로 생을 마쳤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으며 1975년에 유해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한편, 다음달 4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관단체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장인환 선생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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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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