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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링' 사러 가는 중년 남성..왜?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쥬얼리 상점 앞을 서성인다. 쭈뼛거리며 겨우 상점에 들어간 중년 남성은 '아내에게 줄 만한 반지'를 찾는다. 결혼식 이후 신혼 때 '반짝'을 제외하곤 20여 년 동안 반지를 끼우고 다니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본 적도 없는 그는 여자 속옷 가게에 들어간 것 마냥 어색하고 쑥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아내에게 반지를 꼭 선물하고 싶었던 터라 용기를 냈다. 평소 튀지 않고 심플한 것을 좋아한 아내 취향에 맞춰 결국 반지를 샀다. 오늘은 퇴근하자마자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지내면서 반지를 끼워줄 생각이다.

# 초고속 승진으로 굵직한 기업의 임원 자리에 오른 50대 중반 남성은 최근 희망퇴직을 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사실상 뜻하지 않은 시점에 회사를 나와야 했다. 탄탄대로를 달려 왔지만 회사를 떠나고 보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기만 하다. 그리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며 주변 정리할 시간을 갖게 됐다. 바빴던 회사 생활에 가족은 늘 뒷전이었고 그 중심엔 자식들보단 아내에 대한 애틋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언젠가 건성으로 들었던 "남자친구와 커플링을 맞췄다"는 딸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 그는 '지금 내 나이에 아내와 커플 반지를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중년 남성 사이에서 '반지'가 인기다.

아내를 위한 선물로 반지를 찾는 중년 남성이 늘어나면서 예전과 다른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특히 젊었던 시절, '좋았던' 그 때를 다시 떠올리며 커플링을 맞추는 중년 부부도 눈에 띈다.


중년 남성이 반지를 사는 이유는 각종 심리적·사회적 인식 변화에서 비롯된다.


우선 감정에서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노화가 온다. 마음은 점점 여려지고 사소한 것에 신경 쓰며 자신을 돌보게 된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지만 중년의 남성을 챙겨주는 이는 많지 않다. 힘이 돼 주는 건 가족뿐이다. 그중에서도 묵묵히 옆을 지켜 준 아내에 대한 마음이 커지게 된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한몫을 한다. 예전 같으면 중년 부부의 커플링은 소위 말하는 '남세스런' 일에 속했을 법하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에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대다. 오히려 그런 순박하고 소탈한 모습이 진심으로 다가오는 열린 시대가 됐다.


6년여 전 얘기지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에게 커플링을 선물한 사건을 기억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권양숙 여사의 생일과 결혼 30주년을 기념해 노 전 대통령이 준비한 선물이었다. 대통령의 커플링은 유명한 상표도, 화려한 반지도 아니었다. 소박하고 심플한 커플링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아내와 커플링을 맞춘 노 대통령이 너무 멋있다"며 내심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부러움에 그칠 뿐 실제 아내의 손을 잡고 반지를 맞추러 가는 이는 많지 않았다. 주위의 시선도 어색할 뿐더러 '왜 갑자기 이럴까'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눈초리도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요즘은 달라졌다. 주말이 되면 쥬얼리 숍을 찾는 중년 부부가 늘었다. 당당하게 커플링을 맞추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쥬얼리 브랜드 골든듀 관계자는 "주말이 되면 커플링을 사러 오는 중년 부부들이 꽤 많다"며 "대부분 젊은 세대와는 달리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풍의 반지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쥬얼리 브랜드 관계자는 "중년 남성이 반지를 사는 데 있어 특징이라면, 가격보다는 반지를 선물할 상대방의 취향을 보다 더 따지고 상품을 고른다는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100만원 이상 200만원 이하의 반지가 많이 팔린다"고 전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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