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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타미플루 사재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

지난주 대전에서 한 산부인과 의사가 본인과 간호사 5명의 이름으로 신종플루 치료제를 처방 받았다가 곤욕을 치렀다. 가뜩이나 약이 모자라는 판에 증상도 없는 의료진들을 위해 약을 챙겨놨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기자 역시 같은 시각으로 해당 의료진과 관련된 기사를 썼다. ‘타미플루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집단’이 약을 먼저 챙겨둔다면 정작 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겠느냐는 지적이었다.

물론 조짐이 있을 때 빨리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원론적 얘긴지 모르지만 언론의 감시·비판기능을 다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보도를 두고 격려와 항의가 엇갈렸다. 더불어 ‘일부’에서 벌어진 일을 너무 ‘일반화’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즈음 한 여성 연구의사가 메일을 보내왔다. 어느 보건의가 커뮤니티게시판에 올린 글이 쓰여 있었다. 그는 최근 검사를 한 환자가 신종플루 양성으로 확진됐다고 했다.


그는 임신한 아내와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하며 홀로 관사에서 지냈다. 물론 진료는 계속됐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 본인과 의료진을 위해 구한 치료제를 '얌체 짓'으로 몰아붙이는 언론을 나무랐다. 길지 않은 그 글은 많은 여운을 남겼다.


‘타미플루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집단’은 달리 말해 ‘감염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신종플루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을 제 때 구하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신종플루에 대한 1차 진료기관인 동네병원(개원의)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국민들의 따뜻한 시각도 부족했다.


특히 동네병원엔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에겐 타미플루를 처방하라’ ‘타미플루 비급여처방을 모두 제한하고 1인 1회에 한해 처방하라’는 등 정부지침만 줄줄이 떨어지고 있다. 격려는 없다. 백신도 아직 없다. 막무가내로 ‘약을 달라’는 환자들 요구 또한 의사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몫이다.


위험을 무릎 쓰고 치료일선을 뛰고 있는 의료진이 느낄 상심이 읽힌다. 의료진 역시 병을 고쳐주는 직업인을 떠나 개인으로 돌아가면 감염위험이 높은 입장이다.


하루 수십명의 환자를 보는 업무특성상 전파의 위험도 상당히 높다. 신종플루환자와 접촉하면 예방을 위해 치료약을 열흘 동안 먹어야 하는데도 스스로 처방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기자와 몇몇 언론에선 일부 의사들이 치료약 처방을 받은 일에 대해 ‘사재기’란 표현을 썼다. 방탄복 없이 ‘전투’에 나선 일선 의료진의 진료의욕을 꺾은 셈이 됐다. 깊은 유감을 전한다.

노형일 기자 gogonh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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