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났습니다. 조상들을 기준으로하면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 셈입니다. 2009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1월1일에 새로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오랜 습관 탓인지 이번 음력 설을 지나면서 또 한차례 연초에 세웠던 결심을 점검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음력 설이 주는 의미가 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쉬는 날이 많았지만 이번 연휴는 유별나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폭설로, 교통체증으로 고향 오가는 길이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휴일내내 뉴스를 장식했던 용산재개발 시위진압관련 책임소재를 따지기위한 조사, 군포여대생 살인범 검거소식 역시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부터 새로운 비즈니스 데이는 어김없이 시작됐습니다. 수출, 소비, 투자 등 경제지표들이 온통 ‘마이너스’뿐인 현실을 극복하지 않으면 어두운 우리의 미래는 더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경제위기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정치의 위기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위기입니다. 편을 가르고, 민심이 갈라지고, 지도층의 리더십에 틈이 생기면 경제회복도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치권은 오늘부터 설 민심을 무기로 내세워 상대방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당길 것입니다. 문제는 그 민심이라는 것입니다. 자기편에 유리한 것만 민심으로 짜깁기할 경우 오히려 화(禍)를 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쟁으로, 정국혼란으로 이어질 경우 그렇지 않아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위태한 상태에 놓여있는 경제의 앞날은 불을 보 듯 뻔한 상황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심을 해석하는 데 여와 야가 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들려오는 의원들의 목소리는 다른 것 같습니다.
혹시 민심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일부의 생각을 전체의 민심으로 받아들여 행동하면 그것은 곧 국민의 불행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회생을 지연시키는 화를 자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 민심 중심에는 “경제가 이 모양인데 정치인들은 왜 매일 싸움만 하느냐”는 질책이 많았다고 합니다. 경제를 빠른 속도로 회생시키라는 국민의 명령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경제를 회생시키는 지름길은 경제 주체들 간의 신뢰구축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위기가 더욱 걱정되는 것은 신뢰의 위기가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상호간의 믿음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신뢰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민심의 소재를 바로 알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이 나오게 돼 있습니다. 민심과 신뢰와의 거리가 짧은 만큼 경제는 빠르게 회복될 것입니다.
여당도 그렇고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애담 스미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장에 룰이 없고 신뢰가 깨지면 경제는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 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회생에서 신뢰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설 이후 첫 비즈니스 데이를 시작하면서 떠올려지는 말은 ‘만티 로버트가 깨우친 신뢰’의 법칙입니다. 그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말(馬) 조련사였습니다. 그의 말 조련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는 인간과 말 사이의 신뢰구축에서 말 조련을 시작했습니다. 특정한 지시에 의해 말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 스스로 경계를 풀고 순응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스스로 순응하도록 하게 했습니다. 상호간의 믿음을 기반으로 이야기하고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케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이 어떤 일을 하게하는 조련사는 위대한 조련사가 아니다. 위대한 조련사는 말이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게 만든다”는 유명한 원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가 이러한 원칙을 만들어내기까지 말을 길들이는 전통적인 방법은 인간의 언어로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전통적인 조련법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는 지시대로 따르지 않으면 고통을 주는 방법입니다. 사람의 지시에 거부하면 채찍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한 두 살 난 망아지나 야생마를 길들이면서 고삐와 굴레를 씌우고 안장을 얹는 작업은 보통 한 달 이상 걸리는 매우 위험한 작업입니다. 자유롭게 들판을 뛰놀던 말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런 구속이 두려울 뿐 아니라 괴롭기 때문에 저항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야성을 간직한 말이라면 자신을 길들이려 하는 조련사에게 생사를 걸고 저항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말 조련사가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티 로버트는 달랐습니다. 인간과 말 사이의 신뢰구축에서 출발, 말이 스스로 경계를 풀고 순응할 수 있도록 해 6000년 간 내려온 말 조련법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만티 로버트의 신뢰구축을 통한 말 조련법에서 경제조련(경제회생)의 지혜를 찾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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