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연기자
미국이 자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를 규제하는 입법을 주도한 티에리 브르통 전 유럽연합(EU) 내수 담당 집행위원 등 유럽인 5명의 입국을 금지했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날 브르통 전 위원과 비영리단체 관계자 등 5명을 비자 발급 제한 대상 명단에 올렸다.
유럽연합 깃발. 로이터연합뉴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서 "너무 오랫동안 유럽 이념가들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미국의 견해를 처벌하기 위해 미국 플랫폼을 압박하는 조직적인 노력을 주도해왔다"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터무니없는 역외 검열 행위를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루비오 장관은 이들이 미국인과 미국 기업을 상대로 한 검열을 조장해왔으며, 잠재적으로 심각한 외교적 악영향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사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은 SNS에 비자 발급 제한 대상 5명의 신원을 공개했다. 브르통 전 위원 외에도 독일의 온라인 혐오 피해자 지원단체 '헤이트에이드'를 이끄는 안나레나 폰 호덴베르크와 조세핀 발롱, 영국의 가짜뉴스 감시기관 GDI 설립자 클레어 멜퍼드, 디지털혐오대책센터(CCDH)의 CEO 임란 아메드 등이 명단에 올랐다.
로저스 차관은 입국 대상 제한자들에 대해 "미국인의 발언을 검열하도록 선동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브르통 전 위원에 대해선 EU 디지털서비스법(DSA)의 배후조종자라고 칭했다. 그는 지난 2022년 DSA 제정을 주도한 인물이다.
엑스와 메타, 구글 등 미국 빅테크를 겨냥한 이 법은 플랫폼 기업이 온라인상의 불법 콘텐츠와 혐오 발언, 허위 정보 등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전 세계 매출의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규정한다. 실제로 EU는 이달 초 엑스의 계정 인증 표시와 광고 정책을 문제 삼아 1억20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DSA 같은 EU의 빅테크 규제가 비관세 무역장벽이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브르통 전 위원은 지난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엑스에서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과 온라인 생중계 대담을 추진하자 'DSA를 위반하지 말라'는 경고서한을 보내 외교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사 사례가 계속될 경우 제재 대상 명단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입국 금지 조치에 유럽에서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브르통 전 위원은 이날 엑스에 DSA가 당시 EU 27개 회원국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미국 친구들에게 (말하자면) '검열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곳에 있지 않다'"고 적었다.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은 브르통 전 위원과 다른 네 명에 대한 비자 제한 조치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는 엑스에서 DSA가 오프라인에서 불법인 것은 온라인에서도 불법이 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제정됐다며 "DSA는 절대 역외 적용 권한이 없으며 미국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