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사람들이 장 보기가 불가능한 지역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해결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 복지 예산을 더 쓰게 될 거라고 설명해요. 그럼 납득합니다."
기획 '식품사막'을 취재하며 만난 연구원의 말이다. 스마트폰으로 신선식품을 주문해 집 앞에서 받는 시대에, 장보기가 어려운 지역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는 분명한 불편임에도 이를 사회적 의제로 삼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일상의 불편을 경제적 손실이라 번역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식품사막은 이미 대한민국 곳곳에 존재한다. 국가데이터처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행정리 3만7563개 중 2만7609개는 근처에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곳으로 집계됐다. 주요 배달앱은 사용 불가 지역인 곳이 태반이다. 식품사막에 사는 주민들은 읍내로 장을 보러 나가기 위해 하루 몇 대 없는 버스를 기다리고, 겨울에는 장아찌와 김치로 끼니를 때운다.
그런데도 이 문제는 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식품사막 주민의 일상은 불편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불편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조례를 만들어 지원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중앙 차원의 법이나 제도는 없다. 신선식품 접근성이 삶의 질과 영양 문제로 이어지는데도,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를 제외하면 범부처적 대응은 부족하다.
사실 지방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일본은 이미 수도 한복판에서 이 문제를 겪고 있다. 도쿄에서는 재건축으로 새로 형성된 부촌에서 원주민들이 식품사막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개발과 함께 임대료가 오르고, 저렴한 가격으로 장을 볼 수 있는 상점들이 사라지면서다. 서울은 아직 이를 본격적으로 겪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가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긴다. 끊임없이 개발 이야기가 나오는 도시에서 식품 접근성이 어떻게 변할지는 예고된 수순이다. 다만 우리는 상상해본 적도 없고, 대비도 하지 않았다.
식품사막은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다. 결국 정책의 관심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건강 격차와 돌봄 공백, 지역 공동체 붕괴라는 말이 붙기 전, 문제는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이제는 내가 가보지 않은 사막을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수치로 증명하지 않아도 사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회가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에서 문제를 먼저 정책 테이블 위로 올리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부처 간 칸막이를 넘는 종합적 대응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힘도 밥에서 나오고, 안부 인사도 "밥 잘 챙겨라"로 하는 나라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